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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타인의 기원
  • 토니 모리슨
  • 13,320원 (10%740)
  • 2022-06-10
  • : 619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는 인간이, 배제하는 존재를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현실. 그것도 힘이 있는 자들이 그 힘을 인정받으려 다른 존재를 상정하는 행위. 이것이 타인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의미다. 그냥 단순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일컫기보다는.


나와 다른 존재, 타인. 우리와 다른 존재, 이방인. 이는 곧 배제를 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타인이나 이방인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다름이 아닌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강자가 아니라 약자다. 물론 이때 약자는 현실에서의 약자가 아니다. 약자가 강자를 배제한다고 한들 강자에게 어떤 어려움을 줄 수 있겠는가.


강자가 약자를 배제하면 약자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러므로 이때 쓰는 약자는 스스로 서지 못하고 자신이 홀로 서지 못하고 상대를 통해서 존재 의의를 찾는 존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릴 때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노예에게 의지했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모습들, 그런 모습들이 바로 백인에 의한 흑인의 타자화라고 할 수 있다.


인종 문제, 현대에서는, 특히 인권이 강조되는,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까지 걸고 넘어가는 미국에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문제같지만, 아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 문제가 심각하다. 오죽했으면 몇 년 전에, 불과 몇 년 전이다. 흑인 대통령을 (뭐 이 책에도 나오지만 한 방울의 피가 섞여도 흑인은 흑인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으니) 배출했음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경찰에 의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지금도 유용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토니 모리슨이 쓴 이 책은 그러한 인종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젠더나 경제적 차별도 있지만 흑인들이 생활에서 겪는 인종 차별. 문학에 나타난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백인들에 의해 흑인이 어떻게 타인이 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우선 모리슨은 '인간은 우리 부족 사람과 그 밖의 사람을 구분지은 뒤 상대를 적으로, 즉 취약하고 결핍이 있으며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26쪽)'고 한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결집하기 위해 타인을 설정하고, 그들을 자신들이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행동한다는 것, 이는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29쪽)는 말로 표현된다.


이런 역사가 있으니 타인을 배제하는 마음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강자들에게는 더더욱. 이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약자들을 타인으로 규정하고 배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그러한 모습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모리슨은 '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30쪽)고 한다. 이는 생활에서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한번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우리나라 속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에 잘 나와 있으니...


이렇게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것 하나하나에 신경써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단어 하나, 몸짓 하나가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를 고려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서로 무해하게 접근하기 위해, 고작해야 푸른 공기일 뿐인 우리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적지만 강력하다.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경험이다'(71쪽)고 모리슨이 말하고 있는데, 언어와 이미지, 경험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다. 예술이 간접경험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토니 모리슨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허구적 서사는 타자, 즉 이방인이 되거나 혹은 이방인이 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통제된 야생 상태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동정심과 명료한 눈을 가져볼 수 있고 자기 성찰의 위험을 감수할 기회도 얻는다'(143쪽)고 모리슨은 주장하고 있으니... 


문학(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문학(예술)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이런 노력을 해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토니 모리슨이 주장하듯이 '언어와 이미지, 경험'이 중요한 자원이라고 하면 이것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것이 문학(예술)이니, 문학(예술)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토니 모리슨은 문학에 나타난 인종차별에 대해서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타인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이런 작품은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작품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토니 모리슨이 쓴 작품 중에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읽고 싶단 생각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나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고로 좋은 책은 다른 책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책이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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