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외부의 위협이 아니다. 오즈에서 교류가 없는 곳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하긴 우리나라같이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나라에서도 알려지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있으니, 환상의 나라인 오즈야 말해 무엇하랴.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 나름대로의 삶. 여기에 마법을 부리는 존재가 없을 수가 없으니... 다만 오즈마의 명령으로 오즈에서는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마법을 한꺼번에 모두 폐기할 수는 없는 노릇.
여기에 특별한 마법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마법 자체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꼭꼭 숨겨 놓고 자신만 알고 있던 변신 마법을 알아낸 키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변신 마법을 알아내어 좋은 쪽에 쓰면 좋으련만 힘을 가진 자들이 항상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인정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으니, 여기에 부추기는 존재가 있다면 더더욱 그런 쪽으로 가게 된다. 부추기는 존재로 오즈의 마법사에 종종 등장하는 악당 전 놈왕 루게도가 등장한다.
오즈를 정복하고 자신들이 왕이 되자는 허황된 꿈, 그것도 키키와 루게도는 서로를 이용하고 나중에는 배신할 생각을 지니고 함께한다. 악당들에게 신의가 없음을 이번 편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동물들을 이용해 오즈를 정복하려 하지만, 자신들의 마법에 오히려 걸려들고... 오즈에서는 오즈마의 생일을 맞아 생일 선물을 준비하느라 다양한 모험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도로시와 키키가 맞닥뜨리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오즈마의 생일 선물을 마련한 일행은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키키와 루게도에게 망각의 샘물을 마시게 해 그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마법의 대결,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오즈의 마법에서는 마법 대결이라기보다는 강력한 변신 마법을 누가 이용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나쁜 쪽으로 쓰는 사람과 위기에 빠진 동료(트라트와 빌 선장)를 구하는 쪽으로 쓰는 마법. 그리고 마법의 주문.
몇 년 전에 유행한 해리포터 시리즈에 유명한 주문이 있지 않은가. '아브라카타브라' 이것 말고도 많은 주문이 나오지만,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인 이번 편에서는 단 하나의 마법 주문이 나온다.
'피르쯔쿡스글' 하, 발음하기 힘들다. 이 편에서도 이 주문은 정확한 발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마법의 주문이 나오면 더욱 흥미를 지니게 된다. 한번쯤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이러한 마법 대결이 나오니 더욱 흥미로워지는데, 작품 해설에 보면 작가인 프랭크 바움이 이 편과 다음 편의 원고를 넘긴 다음 출간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출간을 못 보게 된 것.
그렇다면 이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나? 오즈의 마법사라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준 작품이 끊기게 되는가? 아니다.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 계속 창작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 오즈의 이야기는 총 40권이 되었다고 하니(228쪽)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이야기다.
자, 마법 대결이야 흥미진진하고, 그것 자체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이번 편에서 생각할 거리를 찾아내고자 한다면, 바로 음식이다.
우주로 인간이 나가려 하면서 음식 문제가 걸리는데, 이를 알약 형태로 음식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하는데, 오즈의 마법사에서 워글 벌레 교수가 그러한 알약 음식을 개발한다.
먹으면 영양가 많고 간단한 음식. 얼마나 편리한가? 과연 이 편리함이 인간의 먹는 즐거움을 대체할 수 있는가? 체육대학 학생들은 그 음식을 거부한다. 자신들은 진짜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201쪽)고 하면서.
이들의 저항을 보면서 또한 오즈마 역시 '음식 대신 그 푸짐한 식사 알약을 먹기를 거부했'(202쪽)다고 하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 음식은 단지 몸에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넘어서는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주인들이 우주에서 그러한 식사를 계속 한다면 과연 그들은 행복해 할까? 알약이 아닌 우리가 먹는 약간은 번거롭다고 할 수 있는 음식들은 단지 먹는 행위를 넘어서 함께한다는 관계를 인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나.
식사공동체, 우리가 식구(食口)라고 하는 그런 의미로 음식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작가는 갈수록 간단해지는 음식 문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1900년대에 들어서면 패스트푸드 문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을 테니까. 검색을 해보니 1921년에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 전에 그러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이번 편인데... 굳이 그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현실에서 가끔 마법이 일어났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러한 마법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이제 프랭크 바움이 쓴 마지막 권만 남았다.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