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도담서림(道談書林)
  • 동의
  • 바네사 스프링고라
  • 12,600원 (10%700)
  • 2021-02-01
  • : 322

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실화라고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글. 글을 써서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여기에 허구는 없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과 구분하려면, 이 작품에서는 '소설'이란 말을 빼야 한다.


'아이'부터 시작해서 '글을 쓰다'로 끝나는데, 글의 끝부분에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 나온 끝에 글을 쓰게 된다.


글쓴이에게 글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것이어서였다. 너무나 오래전부터 빼앗겼던 나의 이야기(241쪽)'를 스스로 하는, 주체가 되어가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아이 때, 외로움에 싸여 있던 아이에게 친절과 사랑을 가장해 찾아온 사람. 그 사람은 그런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단지 성적 욕구의 만족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나쁜 놈 하면서 문제를 간단히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유명한 작가라는 것이고, 이러한 경험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 자신이 만났던 소녀들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은 작품이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작가. 또한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소녀들을 자신의 올가미에 옭아맨 사람.


그에게 소녀들은 그것도 16살이 넘어서는 안 되는, 사춘기에 해당하는 소녀들(물론 아시아에서는 소년들도 포함이 된다)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도 먹잇감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그가 성 맹수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사자나 그밖의 맹수들이 사냥을 할 때 노리는 먹잇감이 무엇인가. 무리 중에서 약해 보이는 동물을 선택하지 않는가. 그리고 한번 물면 놓아주지 않는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


이 책에 나오는 G로 표현되는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외로움에 빠져 있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는 소녀들을 찾아내면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자신에게 성적 만족을 또는 그의 말대로 하면 작품에 대한 영감을 더이상 주지 못해서 그가 만나지 않게 될 때까지.


그런데 이것도 자신이 먼저 소녀들을 내쳤을 때 이야기다. 자신이 소녀들에게 내쳐짐을 당했을 때, 즉 먹잇감에게 반격을 받았을 때 맹수들이 당황하는 것과 같이 그 역시 당황한다. 하지만 맹수가 당황한다고 사냥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끝까지 추적한다. G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만나려 한다.


만나려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헤어짐도 깔끔했을 터. 하지만 G에게는 자신이 내침을 당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작품으로 또 타인에게 유포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어린시절 G에게 당했던 일들이 글쓴이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상처가 된다. 학교도, 다른 일도 하기 힘든 상황. 이때 질문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외로움에 처해 있던 소녀들이 왜 중년 남성에 끌리느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째서 그는 소녀들에게 끌리느냐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소녀들이 아니라 바로 그런 소녀들을 유혹해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승승장구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2020년대에 들어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고, 글쓴이 역시 완전히 그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씀으로써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더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질문의 방향, 책임의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


'동의'라는 말,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경향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 그것은 권위에 의한 폭력을 계속 용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 속에서 이런 책을 써서 문단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성폭력의 전말을 밝힌 글쓴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글쓴이 역시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문단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꽤 많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이 책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를 살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권위를 이용해 가해를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덧글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책에서 이 책에 관한 내용이 조금 소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G에 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G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그 책을 읽어도 좋고, 그 책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읽어도 좋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