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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프로데 그뤼텐
  • 15,120원 (10%840)
  • 2025-01-15
  • : 8,335

죽음을 앞둔 한 남자. 집을 나와 평생을 함께했던 자신의 배에 오른다. 배로 사람들을 실어날랐던 사람. 노르웨이, 피오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들을 이동시켜주었던 그. 이번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배에 오른다. 이젠 자신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게 하러.


그가 집을 나와 배(페리)를 몰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어떤 사람들은 주마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일생이 주욱 펼쳐진다고.


이 소설 역시 그렇다. 닐스 비크라는 사람이 죽음으로 가는 길에 배에서 만났던 사람, 자신의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 그가 페리로 이곳과 저곳으로 이어주었듯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이제 그런 사람들을 자신의 삶과 죽음 사이에 놓는다. 마치 징검다리처럼.


잔잔하게 펼쳐진다. 잔잔하다? 과연 그럴까? 멀리서 보는 바다와 산은 보기에 좋다. 어떤 위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아니다. 바다는 천변만화하고 온갖 위험이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다. 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인생을 바다와 산에 빗대는 경우가 많은데, 인생 역시 그렇게 굴곡이 많다. 멀리서 보면 평평하고 단조로워 보이겠지만, 직접 경험해 보면 너무도 복잡하고 울퉁불퉁하다.


피오르 해안의 아름다움을 '자연'으로 뭉뚱그리고, '이곳의 자연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늘어놓(196쪽)'는 사람 앞에서 ,


'닐스는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있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것은 숲과 바위와 산과 강과 피오르지, '자연'이 아니라고 했다.'(196-197쪽)


이것이 인생이다. 마냥 좋아보이는 것만이 인생은 아닌 것이다. 닐스 비크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둔 닐스의 회상은 아름답다.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평화가 뒷부분에 가면 그의 인생에 평화만이 있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동생의 죽음, 딸들의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 등등. 여기에 뇌졸중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의 모습. 이것은 결코 평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소설은 그의 삶이 결코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


아내와는 평생 사랑하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중에 만날 것을 기약하는 모습. 자식들의 삶 또한 자신들의 삶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는 모습.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삶에는 그 나름의 특별함이 있다. 우리 모두가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닐스 비크의 평범한 삶을 통해서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삶은 모두에게 특별함을, 특히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산 사람의 삶은 더더욱 특별함을, 그래서 그러한 삶이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페리를 운전하면서 만난 사람들, 죽어가면서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떠올리고, 또 이미 죽은 사람들을 배에 태우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는 닐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268쪽)


이런 통찰. 평범한 삶 속의 특별함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특별함이란 꼭 겉으로 드러내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닐스가 아내 마르타를 사랑하는 모습. 둘이 사귀게 되는 장면과 다시 죽음에 이른 닐스가 기다리고 있던 마르타를 만나는 장면. 


피오르는 어떻게 건너왔나요? 그가 물었다.

자전거를 타고 왔어요. (82쪽)


어떻게 피오르를 건너왔나요? 그가 물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왔죠. 그녀가 대답했다. (270쪽)


이 대화가 살짝 변주되면서 둘이 만나 함께 살게 되는 장면과 다시 죽음 이후에 함께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사랑.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이렇게 마르타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은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노트북]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만큼 격정적인 사랑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솔직담백한 사랑. 그리고 마지막까지 같이 하는 모습이 이 소설의 닐스와 마르타를 영화 [노트북]의 두 사람과 연결짓게 하고 있어 영화를 다시 한번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2004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이 되었을 때 보았는데, 재개봉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어 찾아보니, 2016년, 2020년, 2024년에 재개봉이 계속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부부의 사랑 못지않게 닐스가 마르타를 사랑하는 모습이 잔잔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영화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랑에서도 굴곡이 있음을, 그 굴곡을 넘어 함께했을 때 더 큰 사랑과 감동이 있음을 영화와 소설이 모두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든 감동적인 소설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이런 사랑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불의에 저항하는 닐스 비크의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든지, 닐스 비크에 연대해 결국 정의가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페리 동료들의 모습이라든지, 여러 사회문제도 닐스 비크의 삶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들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닐스 비크의 모습을 통해서 그것이 바로 특별함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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