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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서림(道談書林)
  •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 15,120원 (10%840)
  • 2024-08-21
  • : 29,087

읽는 재미가 있다. 깊은 뜻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재미있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두 편 읽었지만, 비록 번역으로 읽었다고는 하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글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결코 길지 않은 문장들. 그리고 어둠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어떤 빛이 비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내용들.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단편이지만 더 짧다고 할 수 있는 소설들이다. 그런데도 내용은 무거운 소설이 많다. 특히 첫 작품인 '작별 선물'은 어떻게 보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저런 인간을 어떻게 두고 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인물도 등장한다.


자식들을 자기 노예처럼 부리는 아빠. 성적 희롱까지 하는 아빠. 그럼에도 한 소리도 하지 못하는 엄마. 집을 떠나는 자식을 끝까지 희롱하려는 아빠. 참, 현대의 도덕으로는 용서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덤덤하게 그려낸다. 이 덤덤함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딸은 집을 벗어나고 있으니,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 읽었던 두 소설에 비해서는 좀 어둡다. 두 소설은 어둠보다는 빛이 더 강했다고 한다면,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빛보다는 어둠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빛을 포기할 수 없게 하는 요소들이 있으니...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실은 결코 빛으로만 차 있지 않으니.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습.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일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작가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의 현실을 보여준다. 


'푸른 들판을 걷다, 검은 말, 삼림 관리인의 딸, 물가 가까이, 굴복'은 남성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주로 어긋남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자꾸 어긋나는 관계를 소설은 보여준다. 사실, 어긋날 수밖에 없다.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남을 중심에 놓고, 남과 나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에 놓고 남을 자신에게 끌어오려고만 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찌 어긋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이런 관계를 어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어둠도 있지만 빛이 더 강하다. 당연히 어긋남이 있지만 이 어긋남은 어둠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빛 쪽으로 향하는 어긋남이다. 빛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둠과 어긋나야 한다. 그 어긋남을 인식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인물들. '작별 선물, 퀴큰 나무 숲의 밤'이 그렇다.


특히 '퀴큰 나무 숲의 밤'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옭아매던 남자(신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일랜드 설화를 차용해서 소설을 이끌어가는데, 여성이 삶의 주체로 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과정에 남성은 보조자로서 등장한다. 첫번째 남성과 두번째 남성 모두 여성과 어긋나지만, 첫번째는 여성에게 어둠으로, 두번째는 빛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이 소설은 [맡겨진 소녀]나 [이처럼 사소한 것들]처럼 빛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완전한 빛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짧은 소설들을 엮은 이 소설집에 주로 나타나는 관계가 '어긋남'이지만, 이러한 어긋남 속에서도 '빛'이 보이게 하고 있으니, 우리 삶에도 수많은 어긋남과 어둠이 있을 테지만, 그러한 삶에도 빛이 있음을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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