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도담서림(道談書林)
  •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한강 외
  • 12,600원 (10%700)
  • 2015-11-10
  • : 5,281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이다. 책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다. 한강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작품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빅이슈]를 읽으면서 그곳에서 소개한 한강 작품이었기에 구해 읽게 된 것.


물론 황순원이라는 작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했고, 교과서에서 그의 '소나기'와 '학'은 물론이고 '목넘이 마을의 개, 독짓는 늙은이' 또는 '움직이는 성' 등도 알았고, 읽은 적이 있으니, 황순원 작가의 이름을 단 문학상을 탄 작품이라면 하는 믿음도 있었다.


읽은 소감은 당연히 좋았다다. 그리고 수록된 작품들도 좋았고. 어느 하나 그냥 넘길 수 없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물론 단편 소설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경우가 많아, 내가 그 작품을 읽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읽는 순간과 읽은 뒤에 내 마음에 남아 나를 이루는 한 요소가 되어 있다고 믿고 있으니.


한강 작품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이다. 이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순간일 수 있다. 사실 눈 한 송이는 금방 녹는다.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녹아버린다. 그렇지만 그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이 아주 길어질 수 있다. 안 녹는다고 느낄 정도로...


제목만으로는 순간인지 영겁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인생을 순간이라고 보기도 하고, 아주 긴 시간이라고 보기도 하니 말이다.


소설에는 영혼이 등장한다.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 그 영혼은 맑은 영혼이다. 원망을 하는 영혼이 아니라 세상을 잘살고 간 영혼이다. 그런데 세상을 잘살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소설은 바로 '잘살다'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결혼을 하면 퇴직을 하게 하는 회사. 결혼을 해도 버티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나가게 만드는 회사. 그것을 바라보는 동료들.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닐 수 있다. 선명한 악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회사를 설립한 사람을 악인이라고 하면 되지만, 그는 그 회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들이 나올 뿐이다. 동료라고 하지만 사건을 대하는 자세는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같은 사건이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처지에서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할 뿐이다.


여기서 과연 '잘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삶이 있을까?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남을 배려하는 삶. 그러나 그 배려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또 과연 그 배려를 남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을 삶을 살아갈 뿐. 그것이 '잘산다'는 의미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한 사람, 잘살려고 한 사람은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한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용납하기 힘들다. 사고든 질병이든 그들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을 추모하면서 우리는 '잘살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자, 이들이 잘살았던 기간은 짧았는가, 아니면 길었는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그들은 잘살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졌을 테고, 그 시간은 무척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을 한 다음에는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행동의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는 사람들이 지니는 시간은 어떠할까? 그들을 보는 시간이 짧을수록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냥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잠깐 생각하고 잊어버리지 않을까. 


반대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는 시간이 긴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의 삶에 대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는 시간, 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시간, 그러는 시간 동안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무척 긴 시간이 될 것이다.


해결이 안 되었으므로, 아직도 진행 중이므로, 그러한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 동안은 괴롭고 힘들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간. 나에게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 생각을 한다.


다른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되면 하고,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한강의 작품을 계속 음미하련다. 이 작품도 한강의 다른 작품들처럼 마음에 남아 쉽사리 나가지 않는다. 자꾸 곱씹게 만든다. 이것이 문학의 효용성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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