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광주민주화운동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숱한 거짓말 속에서 진실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입 다물라고 윽박지르던 시절. 그런 시절이 지난 다음에는 당신들 덕분에 민주화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헌법에 그 정신을 기록하겠다고 말을 번지르하게 하더니, 없던 일로 해버리는 엄청난 말 솜씨들.
말, 말, 말... 진실에서 벗어난 그 말들이 사람들 가슴을 후벼파고 있는데... 어쩌면 그 말들을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정치인들... 그런 정치인... 여기 시에 나오는 정치인일 수도 있다.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정치인. 제 말을 필요에 따라 요리조리 바꾸는 정치인.
'간간 TV에 나와 / 좋은 말 자발자발 잘하던 정치인 / 5·18광주민주화항쟁을 /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한 대선 공약은 / 호남표 의식한 선거용이었다는 말 / 뱉었다 속내 들켜버린 뒤 / 황급히 그 입으로 / 그 말 철회한다고 다시 썰 풀지만,' (박철영, '5월을 생각하며' 중에서. 오월문학총서1, 시. 문학들.2024년. 313쪽)
선거용이 따로 있지, 희생으로 민주화를 이룬 그 운동을 자신의 표를 얻는데 이용해 먹다니.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효용성이 없어졌다고 그런 말을 실천에 옮길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 정치인.
정치는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는데,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정치인들이 판치는 세상은 과연 정치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생각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라니.... 도대체 2000년대에 비상계엄이라니... 국가가 비상사태에 이르렀다는 판단, 누구의 판단? 자신의 정치권력이 위태로워지니 그것이 비상사태?
그러면서 여전히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집단들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인데... 왜 이 난리냐고 하는 뻔뻔함.
그에 부화뇌동하는 집단들. 정치인들. 말이 바로 서지 않은 사회에서 비뚤어진 말들, 자신의 이권만을 챙기는 말들만 난무하는 세상. 그런 세상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운동이 더 생각이 났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여전히 진행 중임을 깨닫고... 그러다가 이 시, 에고, 무슨 전두환의 환생인지, 단어만 몇 개 바꾸면 똑같은 논리겠구나, 이들은 양심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양심이 없는 것이구나, 확신범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설마 이 시를 곧이곧대로 믿고, 옳습니다 하는 그 정도의 문해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없겠지... 없어야겠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들까?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역사를 또 반복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이제 그러한 과거는 과감하게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 죄에 걸맞는 처벌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그래야 다시 이런 말을 하는 족속과 비슷한 자들이 정치를 하는 일이 없겠지.
학살자의 시점 - 이창윤
"이거 왜 이래" /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이었어 /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고 /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도 않았어 / 나는 발단부터 종결까지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 / 살인 진압 발포 명령자가 아니야//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왜 나만 갖고 그래 / 나는 보안사령관으로서 폭동을 진압했을 뿐이야 / 계엄군이 발포하고 대검으로 광주 시민을 무참히 살해했다니 / 이게 말이나 돼? / 군사반란과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 죄목으로 / 내게 사형을 선고한 건 / 가당치 않은 판결이었어 / 결국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특별사면되었잖아//
혹자는 말한다지 / 단죄되지 않은 악은 계속 되살아난다고 / 5·18 망언의 덫은 2019년에도 극우정치의 제물이 되어 / 역사의 발목을 비튼다고 / 반란수괴 전두환 / 발포명령자 전두환 / 학살자 전두환//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민주주의의 아버지 / 대한민국을 수호하려 했던 애국자며 영웅이라고 우겨댈 거야 //
수천 번 죽어도 씻을 수 없는 / 피비린내의 참혹한 과오를 향해 / 무수한 돌팔매 날아들지라도
273-274쪽.
햐, 이거 단어 몇 개만 바꾸면 누가 한 말과 비슷하지 않나? 끼리끼리라고 참 잘 통하지 않나. 양심이 아예 없는 확신범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나섰을 때 겪게 되는 일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이 모양이니, 이름을 바로잡겠다던 공자의 말은 말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성인들의 말은 이들에게 절대로 가닿지 않은 말들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