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닝(Queening)'
처음 들어보는 낱말이다.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새로운 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한데... 퀴닝이라? 그냥 낱말을 들여다보면 여왕이 있다. 그렇다. 이 낱말은 체스에서 졸이 상대편의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하나의 말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여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퀴닝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즉 신분의 상승이다. 이는 자신의 처지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쓸 수 있는데... 이 책은 원래 '퀴닝'으로 나오지 않고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퀴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과연 '퀴닝'이 있을까? 예전에 가난했던 집안의 아이가 고시에 합격해서 신분을 바꾼 사례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법학전문대학원이 되어버렸으니,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상승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힘든 일을 한 사람들이 그 일의 대가로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도 이러한 '퀴닝'이 가능한 사회가 되겠지만, 저자가 마지막에서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일생 졸로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440쪽) 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게 사는 삶이 유지되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이 책의 저자가 나중에 쓴 책부터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결코 노동을 미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자신을 좋게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저자가 먼저 쓴 노동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동사의 멸종]보다 더 생생한 노동의 현장,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꼭 저자만이 겪는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간신히 보장되는 노동 현장에서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 특히 동남아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 한국인인 저자가, 그것도 젊은 한국인인 남성 노동자인 저자가 겪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보다도 더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는 저자도 어떨 때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말을 하고, 그들을 막 대하고 있다는 사실. 머리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다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이 막상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이 책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으니...
또한 힘든 노동을 경시하는 그 노동으로 편리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런 사람들에게 질리다 못해 결국 그들을 막 대하는 저자의 모습이 "뭐 저런 노동자가 다 있어?"라고만 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막바지에 처한 사람들의 몸부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저자가 한 말에 동의한다. 정치인들, 한번 이런 노동현장에 화서 일해보라고... 돼지 농장에서 돼지분뇨를 날라보라고... 또 꽃게잡이 어선에 타서 꽃게잡이를 해보라고, 요즘은 셀프 주유소가 많이 생겼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손님들로 늘 북적이는 주유소에서 일해보라고, 아니 지금도 우리나라에 만연하는 기계공장에서 일해보라고...
예전에 '삶의 체험 현장'이라는 방송이 있었는데, 유명인이 가서 하루 체험을 하고 일당을 받아오는 방송이었다. 이들은 방송에 나온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일당도 꽤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책을 보면 그것은 방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도 못 되는 돈을 주는 경우가 많고, 노동 현장은 가혹할 정도로 열악하다는 것. 여기에 사회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그것도 나보다 조금이라도 힘이 없다면 그들을 무시하고 막 대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그런 모습은 절대로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현장이다. 그러니 이런 책은 우리 사회의 노동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그런 노동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졸이 아니라 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졸이 졸로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