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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민님의 서재
  • 비스킷
  • 김선미
  • 13,320원 (10%740)
  • 2023-09-13
  • : 34,445

자신의 존재에 관한 고뇌는 나이를 불문하고 계속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사람이라면 죽는 날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많은 행위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노력이 개인에게서 시작되지만

사실은 주변의 타인이 그 존재를 인정해 줄 때야

비로소 존재감이란 완성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비스킷]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스러지기 쉬운 비스킷이

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은 무려 청소년들이 직접 읽고 심사과정을 거쳐 채택된

청소년 부문 '대상' 작이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많은 문학들이 있지만

어른이 쓰고 어른이 선택하여 탄생하는 것이 아닌

타깃 독자층이 직접 그 작품을 심사하고 선택한다는 점에서

참신하기도 하고 더 의미 깊은 과정일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 작품이 선정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책의 제일 마지막에 청소년 심사위원단 안내와

과정이 안내되어 있어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청소년 심사위원단에 적힌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보면서

입시 준비에 바쁜 청소년들이 이런 활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기특하기도 하고

단순히 작품을 읽고 투표하는 과정이 아닌,

읽을 분량의 미션과 질문에 답하고

줌 심사 모임을 하면서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이해도도 높이고

투표를 통해 작품을 선정했다고 하니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깊이 있는 생각을 공유하는 경험이

더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가 '○○의 시끄러움' 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주인공은 주변 소리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아이인가? 하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주인공 제성이는 청각이 무척 예민한 아이여서

타인이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소리 강박증, 청각 과민증, 소리 공포증의 치료를 받고 있다.


게다가 '비스킷' 이라는 신비한 존재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자기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소외되는 사람이

3단계에 거쳐 사라져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조각으로 조각나다가 가루로 부서져버리는 비스킷처럼

서서히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비스킷이라 명명했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남이 잘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아이가

타인에게 평범한 아이로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문제아로 인식될 수도, 이상한 아이로 인식되어

그 아이 스스로 존재감이 흔들릴 수도 있을 텐데

다행히 주인공 제성이에게는

제성이의 능력을 믿고 함께 도와주는 친구, 덕환이와 효진이가 있고

부모님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주는 이모가 있다.


지지해 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비스킷은 1단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비스킷의 단계는 수시로 변한다.

자신을 단단히 지켜가며 아예 비스킷이 안되는 사람도 있다.

이 이야기는 제성이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존재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타인을

비스킷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따돌림에 의해 존재감이 작아진 아이를 돕고,

가족 구성원에 의해 소외된 아이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가장 흥미진진한, 자칫 저렇게 어설프게 해서 구출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가정폭력 피해자를 구출하기까지

주인공의 신비한 능력을 이용하긴 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주변인들이 함께 했기에

주인공 스스로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이야기가 펼쳐진다.


"네가 괴로운 일을 당해 숨고 싶었던 건 잘 알아.

근데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한테 존중받을 수는 없어.

네가 먼저 널 긍정해야지 다른 사람도 동화될 수 있잖아.

괴롭힘에 깨진 네 마음, 꿈, 기분 같은 것들을 계속 말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널 이해할 수가 없어.

아이들이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널 이해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그런 사람이 생길 때까지 우리 휘둘리지 말고 같이 자신을 지켜 내자."


"미안하다는 사과는 너 자신한데 해.

지금껏 좋아하지 않아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앞으로 최선을 다해 아껴 주겠다고."



누군가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해 괴롭고 힘들 때

그걸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가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면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나를 존중하고 타인에게 나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 또한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까..




"쉿! 그냥 바람 소리나 듣다가 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멋진 말을 들었다.

천국에 들어왔으니 조용히 천국을 느끼라는 의미.

풀잎이 발밑에서 춤을 췄다. 내 심장도 리듬을 타듯 두근거리는 걸 감출 재간이 없었다.



어떠한 멋진 치장으로 포장된 말들보다

그저 어떤 시점의 풍경이, 바람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걸 그냥 있는 대로 편안히 느끼다가 가~라는 한마디가

큰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다.




비스킷에게 집중하느라고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관심이 소음을 차단할 수도 있구나.



나에게 고통스럽고 나를 예민하게 하는 것이 있더라도

내가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집중을 할 것이 생기면

그 고통이 덜어질 수 있다.



"시들어 가는 게 아파 보여서. 나라도 기억하려고."

주택 공사를 하면 정원이 사라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비스킷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든 꽃을 심었다.

아프겠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소멸하면 잊힐 거라는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는 비스킷이 어떤 아이인지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뻔히 결말이 보이는데도

어찌 보면 무의미하고 허무할 거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비스킷이 결국에는

우리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힘겨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어쩌면 서로의 존재감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그때 조제가 나를 지나쳐 가선 효진이의 손을 살짝 붙잡았다.

효진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옆을 바라봤다.

그림자처럼 어둡던 조제의 몸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려고 마음먹으면 바로 나타날 수 있구나.

물론 그전에 비스킷의 존재를 인지하려는 효진이의 노력이

조제의 마음에 가닿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도움이 빛을 발하려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의 노력과

그 노력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서로 한 발자국씩 다가서야 가능할 것이다.



"조금 전에 깨달았는데 내 존재감은 사회나 학교나 가족을 통해 생겨나는 게 아니더라.

난 비스킷을 찾아내는 것으로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들었어."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고 집착했던 한 가지 일이나 대상에게서

실패를 맛보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나의 존재감을 굳건히 할 수 있기에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노력해서 얻은 관심은 일시적일까, 아니면 다른 관심을 불러와서 쭉 이러질까.

어쩐지 나는 후자일 것만 같다.

노력해서 없는 것들이 진짜 값진 법이니까.

우리는 값진 것을 받아도 될 만큼 노력하고 있으니 조제에게도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진짜 이름이 뭐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조제에게 나가가기 전에, 이름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조제가 슬며시 웃는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이지안. 앞으로 잘 부탁해."

내 가슴에 특별한 이름이 영원히 새겨진 순간이었다.



노력해 봤자 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포기하고 단념하는 편보다 작은 용기라도 내어 노력하는 편이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의 말처럼 존재를 인지하는 그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사회 속에 있으면서도 소외된 이웃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뉴스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가타부타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고심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엉뚱한 방향으로 분노가 이어져 정작 그 사건은 그렇게

안타까운 '남 일'로 끝나버릴 때가 많다.


존재감이 희미해져 사라져버리는 일은

타인이 아닌 나에게도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는지 작은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중요하고

그런 일이 생길 때 나 스스로도 용기 있게 힘을 내야 한다.


얼마 전에 신랑이 출장으로

새벽시간에 고속버스를 타야 할 일이 있어서 배웅을 하러 갔다.

아직 어둠이 깔린 이른 새벽이라

조명도 제대로 켜지지 않은 터미널이었는데

늘 그렇듯 신랑이 탄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지켜볼 요량으로 버스 근처에 서 있었는데

신랑이 창밖으로 나를 찾는 듯 이리저리 살피더니

커튼을 치고 '조심히 잘 들어가'라는 톡을 보내는 것이다.

난 신랑이 바로 보이는 창밖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조명이 없는 곳이어서 주변 어둠에 묻혀

내가 보이지 않아서 가버린 줄 알았다고 한다.

그제야 아차 하고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내가 있는 곳을 스스로 비추면서

인사를 다시 해줬다.


내 주변 환경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나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작은 조명을 켜는 노력과

그것을 알아봐 주는 주변의 관심이 더해질 때

존재감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존재감을 유지하는 일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충족될 수 없다.


나 스스로를 지키고 주변을 살피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 이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 네이버 카페에서 진행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만을 증정받아 읽고

가감없이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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