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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이슈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기계발과 자기관리 열풍이 도무지 식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이 성공의 비법이라는 논리는 참으로 어리석다, (2)그들의 남다른 성공은 타고난 역량을 아주 잘 발휘한 덕분이긴 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뒷받침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누구든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는 우연이라는 것이다. 똑같은 비법(?)을 실행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그들만큼 성취하지 못한다. 아쉽지만 그런 성공은 소수의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


『성취 예측 모형』(최동석 지음) 82면이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간파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독서(강연) 시장을 분석하는 동안, 자주 거론되는 메시지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자기계발, 자기관리 관련 서적군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는 법' 투성이인데,  알만한 인간들 중의 위인들이 그 예시로 등장한다는 점이 어쩌면 한계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굵직한 메시지(자기 철학)은 사실상 없다, 는 것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다.  『성취 예측 모형』도 예외는 아니다. 개개의 역량 발견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비범한' 삶을 살아가는 '위인'급들이 예시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이 부분은 필자도 언급하고 있다. 어떤 대단한 조직의 CEO에게 '사회 지도층'에게나 필요한 메시지를 담은 것 같지만,   『성취 예측 모형』에서의 역량 탐사는 나를 만나는 방법, 나를 찾는 길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어 제시하는 사람 또한 '스티브 잡스'다.  최동석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에 '그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인도로 향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단 스티브 잡스(이미 작고했고) 쯤을 소환해야 독자들이 귀기울인다는 '계산'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도 한 차례 살피자.  잡스는 인도에서 여러 유명한 선사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돌연 더 이상 구루를 찾지 않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온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스스로 선불교의 진리를 깨우쳤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지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중략)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선불교는 제 삶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략) 저는 선불교의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스승을 만나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려 하지 말라. 당신의 스승은 지금 당신 곁에 있으니."


위의 책 122면 인용을 재인용했다.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여행, 파랑새는 늘 멀리 있다는 설정(프레임)에서 벗어난 사례가 '새로움'이다.  오래전 얘기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최동석이 일침을 가하는 비판의 '전설'에 속하는 책이었구나 싶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내가 왜 그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것이 '달'이었는데.. 정작 그것이 달이심을 몰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그 자체가 나의 놀라운 변화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들으면서 자족하는 것, 그 프레임에 빠져 있다. 그런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나의 독서의 전환점은 문득, 왔다. 서양을 좀 알자. 갑질을 일삼고 있는, 그들의 뿌리를 좀 알자.  멀리가 말랑말랑할 때는 좋은 번역이 없어서, 라고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고, 당면한 문제가 뒤섞여 있어 여유가 없었다.  책을 읽을, 공부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든 '무모했다.' 그 결핍이 서양을 알고자 하는 독서로 분출된 것은 아닌지.  『성취 예측 모형』에서 바람직한 모델로 제기하는 게르만모형이 뭔지,  조심스럽게 『게르마니아』를 읽었지만, 딱히 몇 마디로 정리는 못하고 있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저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가리키는'이 '가르치는'은 아니다. 그 가르침을 오롯이 받아들일 준비도 없다.  "사회구조와 시스템",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 선거인데.. 그러므로 "~하는 법'이나 찾고 또 찾으면서 '학구적인' 삶, 노력하고 있어 하고 하는 것, 그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엮인 책 , 『그리스 로마 에세이』에는 거의 모든 서양인들의 '자기계발'과 '자기관리'가 실려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0 위인선)에는 예시 가능한 고대의 위인들이 선별되어 있다. 이다희 님(이윤기 선생님 따님)이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편 번역도 있다.


'여시아문(如是我聞)'처럼, 나는 이렇게 읽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런, 북리뷰 안에 찾고자 하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 오래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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