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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스터 선샤인>(24부작) 23부.  조선에 다시 돌아온 유진(이병헌)은 최포수 등 그간 작고한 이들의 무덤을 찾아 애도한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동행 은산(김갑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멀리 서해로 해가 지고 있었다. 무덤들을 배경으로 앉은 두 사람이 맥주를 마시면서(음복) 나누는 대화다. 


유진: 전 여전히 조선의 주권이 어디에 있든 관심 없습니다.  그저 그 여인이, 제 은인들이 안 죽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멀리 계속 가보는데 그 길이 자꾸 겹칩니다. 의병이랑.

은산: 비껴 가거라, 총 맞기 싫으면.

유진: 그랬어야 되는데 끝내 비껴가게 될 것 알면서도 온 생을 걸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나도 배멀미를 하는구나. (웃음) 그러니 잘 왔다고 해주십시오.

은산: (잠시) 잘 왔다, 이놈아.

유진: 죽지도 마시고요. 전 그것만 할 겁니다. 어차피 겹친 길.


#2. 잔잔한 물가(WATERSHIP DOWN)라는 점만 다를 뿐 <미스터 선샤인>(인용) 장면과 거의 유사한 앵글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애니메이션)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의 완결편인 4화(포위)의 마지막 장면. 앞일을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파이버(동생, 오른쪽)와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헤이즐(형)이 나누는 대화이다.  '잘 자라고'는 곧 '잘 살았다고'가 된다. 


헤이즐:  무슨 일이야., 흐레이루?

파이버: 별 일 아니야. 형이랑 잠깐 앉아 있고 싶었어. 대단한 길을 함께 걸어왔네. 정말 기뻤고 영광이자 특권이었어.

헤이즐:  관찮아, 파이버. 

파이버: 응, 괜찮아. 잘 자라고 인사하러 왔어. 나의 리더이자 내 형, 내 친구, 굿 나잇~.


'흐라이루'는 ‘작은 흐라이어'라는 뜻으로 토끼 파이버의 다른 이름이다.  원작인 책 속 '토끼어사전'에 따르면,  토끼는 넷까지 셀 수 있는데, 넷을 넘으면 무조건 ‘흐라이어’라고 한다.  '흐라이루'라는 이름으로 보아, 이 둘을 포함하여 한배(한 엄마)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다섯 명이 넘었을 거라고 한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드라마)의 원작소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양장)는 아쉽게도 절판 상태. 언제이고 중고매장에 가면 구입 1순위 책이다. 


#3. 대체로 한 시즌이 8회분으로, 시즌1, 시즌2, 시즌3으로 이어 제작되는 서양 드라마와 달리, 어느덧 우리 드리마는 16회를 기본으로 완결되는 추세를 따르고 있다.  해서 16부작으로 아쉬운 드라마도 곧잘 등장하여 20부작으로 연장되기도 하는데 , K-드라마의 시대라고 해도, 16부작 정도의 이야기가 아닌데, 질질 끄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24부작임에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미스터 선샤인>은 성공작이라 하겠다. 24부를 남겨놓고 있지만, 인용한 장면은 인용2의 두 주인공 토끼가 그간 이룬 성취를 회고하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 <미스터 선샤인>이 넷플릭스 서비스 덕분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애플TV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드라마 <파친코>의 선전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시대물로 두 드라마의 시간이 겹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조선의 주권이 어디에 있든 관심 없다.'는 유진의 태도에서, 소설 <파친코의 강렬한 첫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가 읽히기  때문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단한 애국심이 있어, 참전하는 것은 아니다.  해질 무렵의 조선에서 태어나 산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가온 현실에 응전하게 한다. 은산의 길과 유진의 길은 다른 듯하면서도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끝날 예정이다. 

'택지 개발로 위험해진 고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착하기까지(1부), 이후에는 워터십 다운을 지켜내기 위한 무용담의 주인공 형제( 헤이즐과 파이버)가 나누는 대화, <미스터 선샤인>의 한 장면과 오버랩이 된다. 



'읽기'보다도 '보기'가 익숙해진 때를 살아간다. 책의 길이 있고 드라마(영화)의 길이 있다. 하지만, 스티븐 킹으로 대표작가로 미국의 현대 작가들이 영상화를 전제로 작품을 썼다는 것과 헐리우드의 영광은 뗄 수 없는 상생, 하모니였다. 무슨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이 더불어 팔릴 수 있는 적기에, 독자들은 <파친코>(소설) 개정판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파친코> 개정판 출간 알림 신청을 하고 있다는 건 좀 그렇다. 1천원 적립(추첨), 안 되어도 상관없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도 신간을 구입할 수 있기를. 

자꾸만 작아지는 종이책 시장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의 '새롭게', '다시' 보기와  상호보완하면서 상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준비된 이들에게 온다.  

(소개한 드라마 컷은 핸폰 사진, 해당 화면을 직접 촬영했다. 상태가 좋지 않다. 그렇지만 한움큼 쥔 모래알처럼 사라지는, 해질 무렵의 시간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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