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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집 거리가 가까운 구 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다. 서울이 계란(鷄卵)의 노른자라면 서울을 감싼 경기도는 흰자에 속한다, 그 비유 참신하였다. 이방인 구 씨를 품고 있는 염씨네_세 자녀는 경기도 끝자락 어디쯤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여가 활동은 꿈, 결혼 적령기 넘기고 연애마저 자유롭지 않은 것도 주변에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의 재택근무인 구 씨는 남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대부분의 여가에 술을 사러 오가거나, 마시거나, 취해 있다. 좋게 말하면 애주가나 술꾼, 정확히 술중독이다. 변방에 살기(때문에)에 빠듯한 일상을 반복하는 세 자녀의 눈에 직장과 집이 너무 가까워 (덕분에) 술이나 마시는 구 씨의 대비되는 일상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철역 부근의 편의점에서 소주 한두 병 혹은 두세 병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가로등1이 내뿜는 빛이 끝나는 지점과 가로등2가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지점 사이를 지나는 구 씨. 소주병이 달그락거리는 음향 효과. 집으로 가는 대체로 어두운 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길에서 막내딸 미정은 구 씨를 발견한다.

염씨 부부를 포함하여 세 자녀까지 염씨네 일가와 구 씨가 하는 일의 공통점은 ‘기다림’이다. 그들은 무엇, 지금과 다른 어느 때의 무엇을 기다린다. 때로 그 무엇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단지 어떤, 특정할 수 있는 사람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소주 한두 병을 마시고 떨어지면 다시 24시간 편의점으로 한두 병의 소주를 사러 가는 구 씨(할인마트에 가서 한 박스를 사오세요 제발). 생존을 위해, 자기 계발 차원에서 시간 관리를 하는 이들에게 그는 0점짜리다.

미정은 지금과 다른 뭔가를 줄기차게 기다리고 있으며,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못마땅하여 기다리지 않기 위하여 ‘도발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구 씨는 다른 듯 닮았다. 빈방에 그간 마신 소주병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그가 뭔가를 기다린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술병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운 풍경에 집착한다. 기다림의 징표다.

염씨네 큰딸 기정은 리서치 회사의 중견간부다. 상사인 남자는 바람둥이인데 그 상대들이 하필 회사 여직원들이다. 좋지 않다. 그는 대상에게 로또복권을 선물하면서 작업을 시작한다. 로또는 토요일에 추첨인데 금요일 퇴근 무렵, ‘불금’의 시작 시점도 아니고 꼭 월요일에 대상(여인)에게 로또 복권을 선물한다. 여행의 참맛은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에 있다. 두근거림. 늘 실망했으므로, 그 메커니즘 알기에, 로또 복권 구매는 부질없고 이성은 허락하지 않는다. (생략) 그런데 내게  금전적인 데미지는 없고 뭔가를 기다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모티브를 제공하는 사람, 이제 그를 기다린다. 그는 이제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된다.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NFT이든, 기다림에 기댈 수 있는 뭔 그런 것. 이것들도 일종의 기다림의 대상이다.,

“뭔가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뭔가를 걸고 싶은데 걸만한 것이 마땅치 않다. 기다리고 싶은데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어 열심히 역경 넘어 서 달린다. <달려라 메로스>처럼, 누군가 내 삶의 어느 지점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1이 있을까?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책들>

“그러니까 달리는 것이다. 믿고 있으니까 달리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 늦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도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따라 와라! 피로스트라토스.”(234면) 피로스트라토스는 왕의 인질이 되어 메로스를 기다리는 석공의 제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마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 정말 못 참겠어.)__1막에서, 에스트라공의 대사

블라디미르 :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엘라스트공 : 그건 그렇지.

블라디미르 : 아니면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사이)  우린 약속을 지키러 나온 거야. (134면)





‘기다림’이 가디림이라는 보증이 되지 않은 채, 정처 없이 오로지 그냥 기다린다. 그런 두 사람의 부랑자를 그려낸 희곡이 있다. 바로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1953년 초연)다.(171면)

어떤 의미에서 『달려라 메로스』는 기다리게 하는 쪽의 괴로움을 그린 작품이다.(60면)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가 했던 것으로 보이는 말, ‘기다리는 쪽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쪽이 괴로울까?’라는 말도 세상이라는 우화 속의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62면) 기다리는 쪽은 그저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붕괴, 즉 자괴(自壞)다. 그런데 기다리게 하는 쪽은 기다리는 사람의 신뢰를 시련에 빠뜨린다.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동안 줄곧 타자를 해칠 가능성을 안고 있다. (62-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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