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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르마니아
  • 타키투스
  • 12,600원 (10%700)
  • 2012-03-27
  • : 1,191

"쉿~, 망자의 이름은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망자(亡者)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 영화 초반에서도  이곳에서는 금기라며, (아프리카) 현지 가이드가 경고하지만 무심코 스쳤다.  감독 시드니 폴락, 주연  니콜 키드먼, 숀 펜.. 감독도 제작진도 화려한 영화,  2005년에 제작되어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넷플릭스에서 만난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 2005) 이야기다.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아프리카 오지의 한 나라와 미국 뉴욕 UN본부 안팎,  아프리카 태생인 UN 통역사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 분)이 그녀 외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언어로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을 엿들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제 그녀는 살인 대상 1순위가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 그녀가 연방요원 토빈 켈러(숀 펜 분) 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인터프리터(interpreter), '통역사'의 얘기에 귀를 기울울 시간이다.  


연방 요원(숀 펜): 분노는요? 이 일이 시작되고 만난 사람 중에서 당신이 주와니(아프리카의 독재자)에게 가장 원한이 많더군요. 그 자의 지뢰 때문에..

통역사 (니콜 키드만): 쉿~, 망자의 이름을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누군가 살해되면 ‘익사 재판’이란 의식으로 1년간 애도 기간을 보내죠. 강가에서 밤새 열리는 의식으로 새벽에 살인자를 배에 태워 물로 띄워 보내 빠지게 하죠. (살인자는) 묶여서 수영도 못 하죠. 망자의 가족이 선택해요. 살인지를 익사시키든가 구해주든가 ‘쿠’족은 가족이 살인자가 죽도록 두면 정의는 실현하지만 평생 애도하면서 보내요. 그러나 살려두고 목숨을 뺏는 거로 결론짓지 않으면 그걸로 슬픔은 사라져요. 복수는 애도의 게으른 형태죠. __<인터프리터>, 러닝타임 40분 전후


영화 초입의 의문점이 풀리는 대목이지만 소화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는 '그렇'지만 가슴을 설득하기까지, 1년이란 애도기간처럼 시간이 필요하였다.  망자와 이별하는 데 필요한 49일처럼,  그날 망자와 작별하는 우리의 49재처럼 1년째 되는 날 진행된다는 의식(Drowning Man Trial)은 많이 닯았다. 살인자를 죽일 수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선택권은 유족들에게 있다.  1년 동안 살인자는 혹은 그의 가족 친지들은, 망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용서를 구했을까?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들이 어찌했건 용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유족들은 선택할 뿐이다. 살리면 슬픔은 사라진다. 그러나 복수(방치)하면 정의는 실현된다. 하지만 평생을 애도하면서 보내야 한다. '용서'했다면, 더 이상 망자의 이름마저 언급하면 안 된다. 생각의 여지가 넓어지는 대목이다. 


아래 인용에서 '그곳'은 오늘날 독일어권인 게르마니아이고, 수집하고 관찰한 그들의 '생태' 를 들려주는 이는 기원후 100년 전후를 살아가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다. 


"그곳에서는 아버지나 친족의 원한과 우정이 대물림된다. 그러나 원한이 조정될 가능성도 없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도 정해진 수의 소나 양을 바치면 속죄되고, 전 가족이 이런 보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에도 이롭다. 원한은 인관 관계가 제약받지 않는 곳에서는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__66면, 『게르마니아』 21장 중에서


우정처럼 '원한'이 대물림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 전제이다. 하지만 다른 길도 있는데, 앞서 살핀 영화에서처럼, 복수심은 주머니 속 송곳이다. 분노를  품은 이가 결국 상처를 입는다.  그  마음고생에서  벗어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 현재인의 심사에는 더 다가오지 않을까.  원한을 산 자(=살인자)는 '헤아릴 수 없는' 보석금을 내고 용서를 받았다는 얘기일까? 그런 재력만 있으면 살인해도 무방하다는 그런 해석일까? 더 큰 그림을 읽을 수 있다. 

한 부족이 생존하는 데 구성원들이 그런 원한을 품고 살아간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한이 대물림되고 쌓이면 공동체 전체가 내분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인근 부족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약탈하고 약탈당하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거대한 로마 제국과도 맞짱을 떠서 치명타를 날리는 그들의 힘은 이런 가능성을 열어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투키디데스는 복수혈전이 진행되는 어지러운 로마 황실을 떠올리면서 '한편 부럽고 한편 두려운' 게르마니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했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통보하는 것인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태도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건부 감사 못지 않게 조건부 용서도 개운치 않은 뭔가를 남긴다. 용서도 아니고 감사도 아니다. 이런 무늬가 통용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영화 속 용서는 한편으로는 남은 이들의 이기적인 선택이다. 책 속의 용서는 '조건'이 따르지만 더 '인간적'일 수 있다. 가문이 멸망할 정도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살인, 하려면, 하렴. 현실에는 말 그대로 현실적으로 따라야 할 문법이 필요한 것. 그래도 책이나 영화나 용서를 구하는 이의 진정한 참회가 전제되어 있겠지, 생각하고 싶다.  이 선택 또한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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