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그래, 구례!’라는 글을 올리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피는데 오류가 있다. 구례(求禮)를 아홉 가지 예를 구하는 곳으로 풀이한 것. 두 군데의 문맥을 수정했다. 구례에서 찾고자 하는 아홉 가지 예(九禮)가 있다는 그것은 무엇일까, 정도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구례(求禮)에서 구례(九禮)를 찾아볼까, 호기심이 꼼지락거렸다. 검색어는 ‘구례 아홉 가지 예’다. 인의예지신에다 그럴듯한 네 가지만 덧붙여도 되는데, 호사가(好事家)들이 지나칠 리가 없다 생각하면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서울신문>,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코너다.
=네이밍을 하는 이라면 필독서인 「크라튈로스」의 부제는 ‘이름에 관하여'’다. 『플라톤 전집3』(고르기아스/프로타고라스/이온/크라튈로스/소피스트/정치가)에 수록되어 있다.
“스무 살 적엔 구례에 살고 싶었지요. 아홉 가지 예를 갖춘 마을, 이름만으로 이상향이라 생각했습니다. 섬진강 마을을 따라 산수유 매화 벚꽃 차례로 피고 살구꽃 복숭아꽃 자두꽃 한참입니다. 강물 위에 분홍색 살구꽃과 연두색 자두꽃 은은히 잠긴 모습 환상이지요. 강물은 흘러도 마을 떠나기 싫은 꽃은 물살 위에 그대로 머뭅니다. 시인이 구례에 이사 왔으니 밤새 술 마실 만합니다. 시도 사랑도 삶도 녹록지 않을 땐 술만 한 친구가 있겠는지요. 술 덜 깬 아침 가연이가 아찌 정말 시인이세요? 묻는군요. 구례에 왔으니 아홉 가지 예를 갖춘 인간의 시를 꼭 쓰라는 격려의 말입니다.”(곽재구 시인 시평, 서울신문, 2021. 04. 02.)
이원규 시인의 <뒷집 소녀 때문에>에 대한 시평이다. 시인이 다른 시인의 시에 감상을 덧붙이는 마당이니 그러려니 할까, 구례(求禮)를 구례(九禮)로 해석하면서 어떤 설명도 없다. 더구나 시평을 쓴 시인의 이름이 재구(在九)이지 않은가. 『신新 포구기행』에서 이 시인의 아홉(九)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다산초당이 있는 강진 도암만의 옛 이름이 구강포 혹은 구십포인데, ‘(이곳) 사람들은 강진읍까지 들어오는 긴 바닷길을 도암만이라는 이름 대신 구강포 앞바다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130면). 시인은 “구십포는 강진 남쪽 6리인데 월출산에서 남으로 흘러온 물이 강진현 서쪽의 물과 합하여 구십포가 된다‘는 『동국여지승람』까지 인용한다.
시인은 오래전에 <귤동리 1박>이란 시에서 이 도암만을 장검(長劍) 같다고 했다.
아흐레 강진강 지나/ 장검 같은 도암만 걸어갈 때/
겨울 바람은 차고/ 옷깃을 세운 마음은 더욱 춥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구시포 편(천천히, 파도를 밟으며, 아주 천천히……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에서도 아홉(九)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구시포의 옛이름은 ’새나리불똥‘ '새 바닷가의 불같이 일어날 마을'로 풀이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포구 이름이 ‘구시포(九市浦)’로 바뀐다. '아홉 개의 도시, 혹은 아홉 개의 저자(市場)를 먹여 살릴 마을‘이란다. 새로운 시작인 극수(極數) 구(九)가 지명에 포함된 사례가 무수히 많다. 그러니 구례의 구(求)가 이례적일 수밖에,
굳이, 구례를 아홉 가지와 연결시키면, 구구례(求九禮)쯤이 된다. 그런데 ’옛 구례‘도 아니고 좀 그렇다. 이제 약간의 기지를 발휘할 때다. 전라선 남원역에서 순천역 사이 굵직한 역 가운데 하나가 구례구역인데, 뜻밖에도 이 역은 행정구역상 구례에 있지 않고 순천시(황전면 선변리)에 위치한다. 역을 빠져나와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구례교)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구례다. 옛날에는 지리산을 등반하려는 산악인들이 어김없이 구례구역에서 내려, 은어회 한 접시나 민물참게 매운탕을 먹고 산으로 향하곤 했다. 어쨌든 구례(求禮) 입구(入口)에 있다고 하여, 구례구(求禮口) 역이니, 구구례라는 어색한 이름 대신, 구례구(九禮求)쯤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떠할지. 그래, 구례구(九禮求) 구례(求禮)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참, 『달빛을 깨물다』(시작시인선293, 천년의시작, 2019-06-17)에 수록된 이원규의 시 <뒷집 소녀 때문에> 전문은 아래와 같디. 가연이 '덕분에' 좋은 시 한 편 썼지만 여기서는 '때문에'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뒷집 소녀 때문에
이원규
기필코 좋은 시를 써야겠다
섬진강 변 녹차밭 대밭 옆으로 이사 온 뒤
집들이 꽃놀이 밤새 너구리처럼 술만 퍼마시다
뒷집 소녀 때문에 시를 써야겠다
평균 연령 71세의 강마을에
쫑알쫑알 아이 목소리가 들려
필름 끊긴 창문을 열고 헛기침을 하니
강아지 얼씨구와 놀던 아홉 살 소녀
먹포도 두 눈을 반짝이며 인사를 한다
아찌, 정말 시인이세요?
두 눈이 빨개, 밤새 시 쓰다 나왔어요?
슬그머니 눈곱을 닦으며
마침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생 단 한 편의 좋은 시를 써야겠다
오로지 뒷집 귀농자의 딸 가연이 때문에
=왼쪽은 구례구역(求禮口驛) 전경,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