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간다. 분노에 치를 떤다. 대상이 있다. 복수를 계획한다. 가능하다면.. 그 복수 달콤한 꿀이다. 단체여행을 할 때, 2인 1실로 하룻밤을 한 공간에서 동성의 파트너와 지낼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코를 고는 것은 아닐까, 내가 혹은 상대가, 나는 코를 골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심신이 무척 고단할 때는 그리한다는 것을 아침에 들어서 알고 있다. 양해를 구한다. 그런데 상대가 코를 골아 내가 잠을 설친 적은 많아도 내가 폐를 끼친 경우는 드물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상대도 그럴 수 있음을 늘 감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저편 침대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에 깨어났다. 찢는? 그 소리에 알맞은 단어를 아직 고르지 못하였다. 이를 가는 그 둔탁한 혹은 날카로운 소리~ 그 소-오-름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맺힌 게 많은신가 보다.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치료가 필요하다, 예방이 먼저라는 것 알면서도, 상대가 출장 파트너일 때는 밤새 할 일이 있다며 방 하나씩 잡는 식으로 숙면을 기약한다.
이를 간다. 그런데 녀석들을 그 흔적을 어김없이 남긴다. 나무 들보를 갉아놓거나 과실치상처럼 흙벽에 구멍을 뚫기도 한다. 구멍을 뚫기 위해 갉아내는 건 이해한다, 생존이니까. 하지만 갈아야 하니까 갈다가 바람벽을 망가뜨리는 건 용서할 수 없다. 주권 침해이면서 인권침해다. 요즘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만 날마다 이런 흔적 때문에라도 쥐라는 동물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이 작고 앙증맞은 동물은 거대한 부피의 들짐승을 맞닥뜨렸을 때, 그 이상으로 섬뜩한 뭔가를 준다. 지금이야 공간을 분리하는 재질들이 콘크리트이거나 금속류 등 그들이 흔적을 남길 여지는 거의 없다. 그러나 목재 건물은 사정이 다르다. 표면에 특별한 마감이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쥐는 유해동물로 분류된다. 퇴치하려면 그 흔적부터 찾아야 한다. 안 되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갈아야 하기 때문에 갈았을 뿐인데, 그런 빼박 증거에 그들의 종말은 가까워진다. 그리스적인(?) 비극이다. 때문에 녀석들은 이를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다. 살기 위해 걷는다. 요즘 내게는 걷기가 그렇다. 친구 얘기다. 고향마을에 몇 년 머물렀을 때란다. 보통 한적한 농촌마을이라고 하지만 결코 한적하지는 않았고, 요즘 그렇게 한적한 마을은 없다고 했다. 훌륭한 리뷰가 아닐 수 없다. 밭농사에 할 일이 많아 한여름에도 제초작업 등으로 쉴 틈이 거의 없는 아짐들 얘기다. 저녁 9시쯤이면 두런두런 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창틈으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오늘 화제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 금세 지나치기 때문이다. 8시 30분에 시작된 일일드라마가 끝난 때라는 것을 아는데, 칸트 선생의 산책을 떠올린다, 그처럼 시간를 맞추어도 될 정도란다.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자기 몫 밭일을 하고, 논일하는 서방님들, 업무보조(데모도)까지 긴 하루, 일하다 보면 걷는 거리가 상당할 텐데 야밤에 시간을 내서 부러 걷는 것일까? 그 아짐들 나이 되니, 비로소 알겠더라, 생활가전들과 이동수단의 눈부신 서비스 덕분에 생활이 곧 걷기이던 건 옛날 얘기가 되었다는, 얘기다.
개울(흐르는 물이 그 수준)을 낀 천변이나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걷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대체로 중년 이상이지만 연령층은 특정할 수 없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니까. 한쪽 가슴 어디쯤 심장에만 기대어 살았으니, 그간 고생했을 테니까,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걷다가 생각한다. 씹는 것. 멸치나 북어포, 황태포나 말린 오징어, 건과류 등 씹어야 하는 먹을거리를 정기적으로 구입한다. 어떤 녀석들처럼 이를 갈기 위해서는 아니다. 아니 그럴 수 있다. 씹기와 건강(두뇌)의 친밀성,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씹기와 걷기가 심신 건강에 기여하는 점은 습성과 효과에서 유사하다. 오늘도 걷다가 잠시 개여울 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귀를 쫑긋하지 않아도 아짐들의 얘기가 들려온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저녁 9시에 시작된 농촌마을 아짐들의 걷기에 대해. 씹으면서 걷고 걸으면서 씹지 않았을까? 악플보단 선플이 좀 더 많았기를. 오늘도 걷다, 홀로이 개여울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한다. 말로 버전이다.
『그리스 로마 에세이』 중 플루타르코스의 <수다에 관하여> 참고.
건강한 수다는 있을까?
없을 것 같다. 단언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루소처럼 걷는 법> 참고.
플라톤전집을 읽노라면 ‘소크라테스처럼 걷는 법’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내가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