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법이나 공부하기 위한 동기부여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이 선정되었을 때 지금껏 모임을 통해 만난 다른 어떤 책보다 별 감흥이 없었다. 어떤 책이든 흥미롭게 접근하는 평상시에 비하면 굉장히 독특한 일이라 가만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이미 한참 전에 열렬히 풀어봤기에 속속들이 답을 아는 문제를 앞에 둔 심정 같달까.
한때 나는 ‘더 잘 공부하기 위하여’ ‘공부를 더 하기 위하여’ 몇 권이나 관련 책을 탐독했었다. 바로 나의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이니 이 책의 초판보다도 몇 해는 더 전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지만(입시에 대한 성공과 실패만 따지자면 실패에 가까웠다), 전교 1등이든 전교 꼴찌든 우리나라 학생 중에서 공부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없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사당오락(하루 4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교 가고 5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 못간다)을 실천하는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공부에 올인한 학창생활은 전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소위 공부 얘기 나오면 주름 좀 잡아볼 만한, 성적표에 1, 2 외 숫자가 뜨면 내 세상 어딘가가 무너질 것처럼 두려웠던, 그럼에도 부표처럼 목적 없이 그저 막연히 의대나 서울대 진학쯤을 목표로 하는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공부=성적은 아닌 조금 독특한 우등생이었던지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은 정말이지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순위경쟁에 특별한 큰 뜻도 없었거니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걸 하는 건 또 그렇게 고역이라서 어떻게든 학교 성적을 위한 공부 동기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과 비슷한 책들로 끊임없이 동기를 연명하며 공부하는 기계 같은 재미 없는 시절을 어떻게든 버텼던 것 같다.
저자와 같이 지금의 나에게 공부란 삶과 같다. 살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있기에 살아간다. 숨 쉬듯이, 마치 육체에 자동으로 탑재된 기능처럼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공부한다. 특출난 성과를 이루지 않아도, 특별한 목표가 없어도, 한동안은 글씨 한 자 안 보고 빈둥대다가도, 결국에는 무언가를 공부하는 길 위에 다시 선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지 않을까 싶어 가끔은 체념처럼 씁쓸할 때도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돈이나 명성으로 인정받지 못해도, 누가 시키거나 해내야만 하는 일이 아님에도. 공부가 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 믿으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삶이 더욱 행복해지리라 기대하면서.
반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입시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면, 조금쯤은 덜 불행하게 공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조금쯤은 더 즐겁게 공부하면서.
그렇기에 더 잘 공부하고 싶어서, 또는 해야만 하는 공부에 작심삼일의 동기부여라도 받고 싶은, 당장 앞에 놓인 현재와 미래가 그저 막막하고 두려운 학생들에게 분명 이 책이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서점을 발품 팔아가며 다른 사람의 공부노하우나 합격수기 같은 것을 찾아 읽어대던 그 때의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