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드라마 <미생> 중"
한껏 움츠러들어 움직이기 싫어지는 계절이 오고 있다. 그래도 일주일에 2번은 필라테스, 일요일은 풋살을 하는 40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다. 하지만 이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건 올해 초부터이다.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20~30대에도 밤샘 이런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아이를 둘을 출산하고 40이 넘자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신호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몸이 무질서해진다는 어디선가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이론을 갖다 붙이면서 운동을 멀리했다. 막상 운동을 시작하니 몸이 탄탄해지는 만큼 마음도 탄탄해짐을 느낀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저자 이진송은 헬스클럽의 장기 등록의 꽃말은 '기부'라고 할 정도로 가끔 운동하는 사람이었다. 운동 노마드라고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운동에 도전한다. 관절은 유리관절, 발바닥에도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운동한다. 우리는 왜 운동을 해야 할까?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성이라는 모호한 단어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태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그러니 운동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일은 단순히 나 혼자 잘 살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공정한 마음을 기르고 타인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p.20"
요가원에서 우연히 들어간 필라테스 수업에서 인생의 운동을 발견한다. 이를 표현한 작가의 글은 유쾌하다.
아주 잠깐 맛을 본 그 운동에 강하게 이끌렸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거북목과 척추측만과 골반 비대칭 육신은 본능적으로 필라테스를 알아본 것이다...
p.26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거북목과 척추측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내가 필라테스를 한 이유도 거북목과 척추측만 때문이었다. 확실히 운동을 시작한 후부터 자세도 좋아지고 몸에 있었는 지도 몰랐던 생소한 근육들을 사용하게 된다.
운동장은 여학생을 밀어낸다.
동시에, 학교의 교육과 우리 사회의 규범을 체화한 여학생도 운동장을 밀어낸다.
이는 결국 운동장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운동 그 자체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p.42
사회의 틀안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가두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자조하면서 견딘것 같다. 학창시절이때는 운동장에서 축구와 농구를 하는 집단은 남학생었다. 하지만 최근 아들의 축구대회를 따라가다 보니 변화가 눈에 뛴다. 축구팀마다 아직은 적은 인원수 이긴 하나 한명씩 여자아이들이 있다. 외적인 조건이나 운동신경 그 무엇 하나도 남자아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에이스로 뛰는 어린이 축구 선수들이 많았다. 주일마다 풋살하러 가면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둘째를 데리고 종합병원에 갔었다. 이날 병원에서 처음 본 뒤쪽에 앉아 신 할머니께서 말을 거신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아이가 예쁘게 생겼다면서 몇 살이냐고 가 시작이었다. 그러다 점점 질문 수위가 높아지면서 아들 둘을 낳은 내가 참으로 예쁘다고 하신다. 일까지 한다고 하니 더 예쁘다고 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며느리는 애를 하나 밖에 안 낳아서 속상하다고 둘 이상은 낳아야 한다고 마무리하셨다. 우리는 이런 인싸의 공격에 자주 노출된다. 저자는 주 3회 만나는 아쿠아로빅 회원님들과의 거리두기 때문에 고심한다. 인싸에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모습은 글을 간결하고 재미있게 썼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이면을 보면 씁쓸하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신체의 자율성을 쉽게 침범당할 수 있다. 운동할 때조차 타인의 평가와 감정 노동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이상한 것이 맞다. 나부터 회사에서 지위나 나이 때문에 어린 동료들에게 함부로 대하진 않았는지 반성해야겠다.
성별이나 개인에 따른 근력 차와 체력 차는 존재한다. 그것을 곧장 능력의 기준으로 환원하여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의도는 저열하다.
.....
그렇게 여자의 '체력'과 '근력'을 '선천적 한계'로 설정하고, 그 안에 가둬두려는 사회적 압력과 욕망이다.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약한 존재로 여성을 규정하면 통제하기 쉽다.
가냘프고 '여리여리'해서 '여자 여자'한 여자만이 사랑받는다는 메시지를, 미디어와 사회 문화 전반이 주입한다. 그 기분에 맞춰 저체중을 유지하려면, 타고나지 않은 이상 체력을 갈아 넣어야 한다.
p. 133
우리 사회는 '나이 든', '병든' 몸을 혐오하고 배제한다. 모든 인간은 나이 들고 신체 능력이 약화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몸이 어떤 운동을 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연예인의 몸매를 강조하는 사진에 '○○살 맞아?'라는 타이틀이 붙고, 각종 노화를 예방하는 운동 정보가 넘쳐난다.
p.231-232
책은 가볍고 예쁘고 심지어 얇다. 하루만에 금방 다 읽었다. 하지만 그 안에 내용들을 보면 문체처럼 발랄하지만 않다. 운동이라는 그 공간안에서 마주치는 사소할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 풋살클럽에서 많은 나이가 권력이 될수 없다. 그들이 감정노동하지 않도록 어떻게 조심해야하는지 팁도 얻었다. '톨레랑스'는 운동에서도 코치와 나와의 관계, 나와 다른 회원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1883년에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이 처음으로 부여했고, 우리나라는 1948년이 되서야 획득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는 2018년 149개국중 115위라고 한다. 아직 갈길은 멀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작은 변화들이 보이는 것처럼 앞으로 점점 더 좋아 질꺼라고 믿는다.
운동장은 여학생을 밀어낸다.
동시에, 학교의 교육과 우리 사회의 규범을 체화한 여학생도 운동장을 밀어낸다.이는 결국 운동장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운동 그 자체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