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트럼펫을 불었지만, 그게 생계를 유지해주지는 않았다. 정한은 잊고 있던 현실을 직시하고 트럼펫을 내려놓는다. 막막했다. 예체능의 바다에 있던 그가 어디로 헤엄쳐서 갈 수 있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그가 발 디딜 곳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국가 지원 사업인 식용 곤충 재배의 기회가 주어진다. 때가 되면 갚아야 할 빚이지만, 그에게 3억 원이라는 대출금도 준단다. 이 큰돈이 그가 새롭게 태어날 발판이 되었다. 식용 곤충 재배할 준비를 마친 그가 전에 없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언젠가 인간의 먹거리가 될 식용 곤충, 일명 ‘빵충’ 사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루 2시간 정도 관계 기관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면서 매일 반복된 일정을 소화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빵 맛이 나는 이 벌레는 맛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아니, 근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건 맞잖아. 진짜 딱 봐도 무슨 애벌레가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빵이, 그 이름마저 ‘빵충’이라는데, 선뜻 손이 갈 수 있을까? 배가 고플 때는 손가락도 빨아먹을 만큼 먹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솔직히 표지만 봐도 이걸 먹는 거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책 소개 글을 보고 이게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다시 봐도 영 적응하기 어려운 비주얼이다. 암튼, 이 빵충 사업은 정말 잘 됐다. 사람들의 호기심과 만족감을 채워주었고, 홍보도 잘 되어 이대로라면 돈을 쌓아두고 사는 인생이 계속될 것 같았다. 밥벌이도 못 한다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던 가족들에게 명절에 선물도 사 들고 방문했다. 살면서 이렇게 만족스러울 때가 또 있었을까. 아, 행복해. 반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정한이도 행복했다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곤충을 식용으로 일상화할 수 있을까? 물론, 이미 여러 가지 곤충을 먹는 장면이 낯설지는 않은데,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설정이 그저 상상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나 싶은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바퀴벌레를 양갱으로 만들어서 먹는 장면을 보면서 속이 울렁거렸는데(바퀴벌레 양갱을 먹는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양갱이 바퀴벌레로 만든 건지 처음에는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 곤충들이 단백질 풍부한 흔한 먹거리가 되는 게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빵충 사업으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주인공, 같이 이 사업에 선정된 이들을 보면서도 마냥 긍정적인 결말을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이들에게 주어진 행운이 조금이라도 어긋날 때 그 본성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사업이 잘되니까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이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수요는 한정적인데 공급이 늘어나고 빵충 가격도 하락한다. 한 달 최저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돈이 쥐어지자, 처음 빵충 사업에 참여했던 정한과 동기들은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위반하면서 ‘자이언트 빵충’의 재배에 뛰어든다. 그리고 점점 그 준수 사항을 벗어나는 범위가 커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분위기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슨 방탄복처럼 연상되는 빵충 번데기, 그 번데기에서 나오는 냄새는 무엇이기에 성충을 홀리고 있는지,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봐 여기서 그만) 빵충 사업으로 풍요로웠던 표정들은 이제 피 칠갑을 보고 뒤로 자빠지면서 살길을 찾느라 애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먹고 사는 게 어렵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생업이 되고, 그게 돈이 되면서 생계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면 금상첨화겠지. 하지만 그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이다. 정한이 오랜 시간 트럼펫을 불면서,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은 돈을 벌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건 잠시 현실을 잊은 채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발버둥 치는데도 벗어날 수 없는 실패의 늪이었다. 인생의 처음 주어진 행운처럼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고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독자인 나도 같이 신났다.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봐야 같이 으쌰으쌰 살아갈 맛이 나는 거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목숨을 건 전쟁 같은 상황이 펼쳐졌을 때는 숨 차는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것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흘러가지? 주어진 규칙을 성실하게 지켰는데, 나중에 보니 그 규칙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했을 때는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인생 실패도 겪어보고 잘못 살아온 시간에 속죄도 했는데, 사랑 하나만 믿고 새로운 시작에 뛰어들었는데, 왜 세상은 내가 그리는 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건가. 살아보겠다고 욕심 좀 부린 결말이 이렇게 처참해도 되는 거냐고.
내 취향의 소재는 아니었지만, 너무 흥미로웠다. 많은 관객이 봤다는 영화 <부산행>도 나는 그저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취향은, 괴물이 나오고 뭐가 막 잡아먹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러니 열차 안의 좀비들이 그냥 웃기게만 보였겠지. 그런데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말았다. 그놈의 빵충, 인간의 먹거리를 대신해줄 단백질 덩어리의 변화가 어떤 결말로 최후를 맞이할지 궁금해서 말이다. 처음 빵충 사육의 성공을 보면서 주인공과 같이 기뻐했고, 어제까지 망한 인생 좀 피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상기해주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주인공의 인생이 변화하는 것만큼 빵충이 변화하면서 일으킬 또 다른 사건이 기대되면서 긴장감이 몰아치더라. 아, 진화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구나. 진화하는 만큼 욕심이 다양해지고 커진다는 것 역시 어느 개체나 비슷하게 적용되는 본심이었다는 걸.
저자의 말처럼, 사육종으로 살면서 야생종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길러지듯 수동적으로 좀 편하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길들여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살면서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겪는 순간들이었다. 정한의 말대로 그가 마지막에 붙잡은 게 미래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붙잡았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살아온 인생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이 한 편씩 들려올 때마다 리듬을 타는 듯했던 이야기는, 다양한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게 한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봤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비쳐서 누구 하나 미워할 수도 없게 하는 게 참, 아이러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재난 영화인가 싶었는데, 세상살이의 잔인한 교훈으로 가득한 이야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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