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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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원동 브라더스
  • 김호연
  • 15,750원 (10%870)
  • 2024-07-19
  • : 6,521


8평짜리 옥탑방에 성인 남자 4명이 부대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잠깐 숨이 막힌다. ‘잠깐’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걸 아주 잠깐 했으니까. 친구의 하숙집 방에서 하룻밤도 신세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모습이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혼자 생활하는 공간을 침범하는 게 어지간한 사정이 아니면 말도 못 꺼내 볼 것 같아서 이해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게, 또 그게 현실 속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게 더 아프기만 했다.


화자인 ‘나’ 오영준. 8평짜리 옥탑방의 공식적인 세입자이자, 무명 만화가이다. 출간된 작품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백수에 가까운 구직자이기도 하다. 오늘을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근심하던 중, 어느 날 영준에게 예전 출간작의 출판사에서 알게 된 김 부장이 찾아와 함께 지내게 된다. 이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싶을 무렵, 김 부장은 텐트 하나로 옥탑방의 또 다른 방을 만든다. 거기에 오래전 영준이 들었던 만화 작법 강의에서 인연이 된 싸부도 이 옥탑방에 동거인으로 등록한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집주인이 아니다. 집주인 슈퍼 할아버지는 이들을 야단치고 명확하게 계산하여 월세를 다시 책정하기에 이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지, 만년 고시생 ‘삼척동자’ 역시 이 옥탑방에 드나들며 이들과 형제애(?)를 쌓는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각자의 절망을 공유하는 이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날들을 보면, 이게 형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기까지만 들어도 심란한데, 이들 모두가 오늘도 보장 못하는 날들을 살고 있다는 거다. 만화를 그리겠다고 하지만 일이 없어서 누가 건너 소개해준 학습만화를 그리게 된 것도 감지덕지하는 영준, 기러기 아빠로 아등바등하고 있지만 역시나 캐나다로 보내줄 돈이 없어서 걱정만 가득한 김 부장, 큰소리 떵떵 치고 있지만 별 볼 일 없어서 아내와 이혼 직전에 놓인 싸부, 언제까지 결과 모를 고시 공부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걸 알지만 다른 길을 찾지 못한 삼척동자까지. 이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있으면 뭐가 나올까 궁금하긴 했다. 종종 월세도 못 내서 보증금 까먹는 건도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는데, 영준은 이들의 인생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이 방에서 나가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오갈 데 없는 이 루저들에게, 걱정에 한숨이 덤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무슨 대책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느긋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인간들이 모여 있는 게 수상하기만 할 무렵, 뭔가 꿈틀거린다.


바닥을 친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그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랬다. 이들이 더 떨어질 수 없는 데까지 떨어졌을 때, 내가 아는 현실은 그냥 그 바닥에 누워있다가 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비빌 언덕도 없으면 또 포기하게 되는 거고. 이들이 가진 환경에서 다시 일어서고 뭔가 이뤄내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은가 보다. 자꾸만 뭔가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움직이고, 이렇게 계속 바닥을 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구시렁대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보여준다. 계속하다 보면 되는 게 있다는 믿음을 주기 시작한다. 해봐, 더디지만 되긴 되잖아. 뭐 이런 말을 듣는 듯한?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고 정리해나가면서도,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잘 되지 못하는 결과 앞에서 더 절망하거나, 뭐 그랬다. 이들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 나가던 일도 그리 잘 되지는 못했다. 싸부는 결국 이혼했고, 삼척동자는 예상대로 고시에서 떨어졌다. 손맛을 자랑하던 김 부장의 콩나물국밥도 망한 것 같았다. 그렇지, 다시 일어서는 게 그리 쉽다면, 세상에 잘 안될 일이 뭐가 있겠어. 웃긴 건, 그런 나의 부정적인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가 이들에게 한 번만 더 해보라는 주문을 거는 거다. 당장에 솥단지 엎고 그만둘 것 같았던 김 부장의 콩나물국밥은 몸이 피곤할 정도로 손님이 들끓었고, 뭘 위해 하는지도 모르게 계속 고시를 파고들었던 삼척동자도 다른 길을 찾았다. 지질한 이혼남으로 남을 것 같았던 싸부에게도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인공 영준. 그는 생계를 위해 학습만화를 그리지만 그만의 또 다른 인생도 펼쳐졌다. 잘됐다고 엉덩이 팡팡 두드려주고 싶게 하는 이들의 표정이 막 그려진다. <꽃보다 남자>의 F4보다 이들이 더 사랑스럽다.


무슨 인생 반전을 이렇게 이뤄내나 싶겠지만, 소설이니까 그렇게 그리는 것 아니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그리고 이들과 같은 인생의 힘든 시기를 건너는 소설 밖 또 다른 주인공들에게. 이들이 다시 일어설 용기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냥 바닥에 누워있지만 않아서다. 뭔가 계속해보려고 하고, 그때마다 또 다른 위기에 부딪혀 다시 절망하며 벽 보고 누워있었지만, 또다시 벌떡 일어나려고 했던 의지를 보여줬기에. 말 안 해도 다 아는,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가 쉽지 않아서 별일을 다 겪고 사는 우리지만, 그때마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고군분투를 떠올리면서 또 한고비 넘어가고 싶어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뭐,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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