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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필적 고의
  • 기윤슬
  • 15,120원 (10%840)
  • 2025-09-18
  • : 275


인간이란 게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은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어느 정도 이타적인 태도로 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그 이타심을 발휘해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자기가 취하는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자신을 위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더 궁금해진 하더라.


주인공 현주의 오늘은 행복하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괜찮은 집안의 남자 석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 행복을 계속 유지하기만 하면 인생 탄탄대로 그대로 달려가면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나타나 현주의 행복을 흔들고 있었다. 현주가 그렇게 잊고 지내고 싶었던 과거의 시간을 불러와 현주 앞에 펼쳐놓는다. 아니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던 적도 있지만, 고의가 아니었으니 자기 잘못은 없다고 스스로 세뇌하듯 잊은 세월이었다. 어린 시절, 현주의 엄마가 재혼할 거라며 남자와 남자의 딸을 데리고 왔다. 현주 눈에는 마냥 한심해 보이는 이 남자가 자기 아빠가 될 자격은 없을 거로 여겼고, 그의 딸 역시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무시했다. 특히 그 남자의 딸 유미는 현주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사이가 좋은 자매 흉내를 내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없었던 현주는 참고 살았다. 자기 나름대로 이들을 이용해 가면서 말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현주는 살던 곳을 떠나왔다. 그곳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는 자기 인생에 그 시간을 포함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인제 와서 이런 협박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굴까. 누가 현주를 협박하면서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자꾸 언급하는 걸까.


소설은 현주가 그 협박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에서 그녀의 주변 인물, 약혼자 석현과 오랜 세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던 종욱 선배와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주의 고백 같은 시선과 엄마의 재혼남과 그의 딸 유미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때야 퍼즐이 맞춰진다. 아마도 그럴 줄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뒤통수에 마치 내가 주인공인 삶조차 내 맘대로 될 수는 없는 건지 의욕이 꺾이기도 하더라. 아니면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의 속내를 그대로 알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상대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 살아야 하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보인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인생의 곁에 두기 싫을 때 내칠 수도 있는 건데, 현주는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왔던 것뿐인데, 왜 이런 결과를 맞이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의 의도와 행동이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도 현주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인생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내 인생부터 챙기자는 마음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미필적 고의는 법률 용어 중 하나로,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현주가 자기가 빠져있다고 여긴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행동을 누군가는 미필적 고의가 아니었냐고 묻는다. 어떤 상황이 나쁘게 될 것을 예상했음에도, 굳이 나서서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방관함으로써 생긴 결과에 자기 인생이 피어나게 했다는 게, 정말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기만 한 걸까. 유미는 그곳에 가고 싶었을 뿐이고, 현주는 그곳에 가라고 했던 것뿐이고, 그곳에서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던 거 아닌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순간을 비웃듯, 완벽한 행복을 만들려고 했던 그 순간에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는 듯했다. 예상하지 못한 진실을 마주한 반전은 참 씁쓸했고, 내가 상대의 마음을 갖고 놀았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게만 보였다. 사는 게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기운 빠지기도 한다. 많은 것을 가진 내가 이긴 것 같지만, 언제든 나를 무너뜨릴 약점을 들킬 수도 있다는 게 생존의 민낯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생존의 방식에서 우리는 언제든 미필적 고의를 저지를 수 있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 보이는 무심함이,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벗어나기 위해서. 그러면서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지른 미필적 고의는 없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지를.


#미필적고의 #기윤슬 #한끼 #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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