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봉 못 봤어?”
“거기 서랍 안에.”
“없는데?”
“다 떨어졌나? 그 많던 게.”
흔하디흔한 소모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도 ‘다 있다는 그 매장’에서 사서 온 면봉. 1천 개가 들어있는데, 1천 원이다. 한 개에 1원이라는 말인가. 요즘 세상에서 이런 가격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다 있는 매장’이라 가능한 가격인가 생각하기로 한다. 어쨌든, 언젠 사다 두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 사용해왔을 거다. 최소 1년 이상은 충분히 사용할 양에 1천 원이라는 가격은 합리적인가 아닌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용해야지. 일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렸으니, 가격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면봉이란 아이는 스스로 광부라고 말한다. 어둡고(콧구멍), 비좁은 동굴(귓구멍)에 들어가서, 누렇고 딱딱한 걸 캐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에이~지지~) 얼굴이 까매지도록 석탄을 캐기도 하고(눈화장 정리), 가끔은 피를 묻히기도 한다(립스틱 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질문질~). 때로는 구급약 상자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공구함의 보조 기구 역할을 할 때도 있다. 특히 쌓여가기 쉬운 틈새의 먼지를 쓱싹쓱싹 닦아내면서 꼼꼼함을 자랑하기도 한다(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런 거 기억하면 정말 옛날(?) 사람인데, 요즘 사람 중에 성냥 아는 사람 있을까? 십 대인 우리 조카들도 어렸을 때는 거의 몰랐던데, 최근에는 케이크 사면서 초를 같이 받을 때 긴 성냥을 주기도 하고, 언젠가는 상품 구매하면서 사은품으로 제작된 성냥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 예전에 그거 있었잖아. 팔각성냥. 그 팔각 통에 가득 담겨 있던 성냥이 굳이 불을 붙이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자꾸만 사라지는 이상한 일이 흔했다. 그 안에 담긴 성냥 꺼내서 사각으로 만든 도형 이동 퍼즐에 쓰기도 했는데, 성냥갑에서 나온 개수와 사용하고 다시 들어가는 개수가 꼭 달라진다. 어디로 탈출한 건지 증발한 건지. 아, 내가 성냥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그때의 우리가 성냥갑으로 놀던 퍼즐에 지금은 면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거지. 성냥 길이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워져서, 혹시나 이런 퍼즐을 하고 싶다면 자리를 넓게 펴야 할 것 같아.
생각보다 면봉이 하는 일이 참 많았다. 일상의 곳곳에 비치되어 손만 뻗으면 손에 닿을 정도로 흔하고 익숙한 자리에 있었다. 쓸모가 많아서 귀한 아이인데, 그 귀함을 모른 채로 가볍게 사용해온 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해지기도 하더라. 밀도가 높았던 면봉의 집에서 면봉이 하나둘씩 탈출하면서 점점 그 대열이 흐트러진다. 반듯하게 세워져 있던 아이들이 가로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그 자리를 이동하면서, 몇몇은 사라져서 안 보이기도 한다. 시절 인연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건가 싶을 때, 한 친구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여. 면봉의 삶이 지겨워졌나? 새롭게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건가? 뭐지, 도대체?
가끔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지금도 수시로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는 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건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한 번씩 자기 검열 같은 시간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타인의 인생이 기준이 된 계산법은 항상 어긋났고, 나와 맞지 않았다. 기본적인 성향부터 살아온 환경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가치관의 기준까지 달랐다. 그러니 비교 대상부터 틀렸던 거다. 그냥 나 자신과 비교하는 나의 모습이 우선이어야 했다는 것을.

면봉도 꿈이 있었다. 오색찬란한 색을 칠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더 넓은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갖지 못한 타인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수시로 묻기도 했다. 처음에, 면봉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구가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워하기도 했지만, 그 화려함 뒤로 친구의 진심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뭔가 크게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변신에 성공한 그 친구가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생의 얄궂음을 떠올린다. 여기서 뛰쳐나가면, 지금과 다른 것을 향해 가면 인생 항로 크게 달라질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더라 하는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다른 시도를 하지 말라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 모습이 하찮거나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가끔 부러질 때도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님을. 재밌고 설레는 일들이 생기는 게 우리 일상일 테니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이 가치 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면봉이 주인공이 되어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는지 놀라우면서, 습관적으로 면봉을 사용하면서 겪었던 일상의 소박한 에피소드에 가치를 담아냈다. 한 개에 1원 취급받고, 함부로 쓰고 버려도 괜찮은 일회용품 같지만, 없으면 불편한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닌가. 앞으로 면봉 사러 가면 분명 지금과 다른 시선으로, 이 제품의 가치를 새롭게 느낄 것 같다.
* 이 책에 면봉을 표현한 즐겁고 유쾌한 그림이 많이 담겨 있다.
그 그림을 다 옮기고 싶은데, 스포일러가 될 까봐 못 옮기는 게 아쉽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면봉의 궁금하다면 펼쳐 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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