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만 보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패러디한 코미디인가 싶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 웃음 코드를 장착한 추리소설일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도 그렇지, 마늘밭이라니. 제목만 봐도 여전히 웃음이 났는데, 막상 읽기 시작한 소설은 웃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추리소설 작가 유민은 톱스타 차이한과 연인 관계다. 물론 이 둘의 관계는 공개되지 않았다. 가끔 이한이 변장술에 가까운 차림새를 하고 유민을 만나러 오기도 한다. 그런 이한의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유민은 그의 일상이 피곤하다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의 기운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의 과거가 현재의 그를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연인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여서 알고 있는 이한의 과거, 그가 개명까지 했지만,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삶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한의 유민을 향한 사랑은 늘 한결같았고, 그가 늘 괜찮다고 하는 말을 믿고 싶었다.
사실 이한은 아역 연기자로 시작해 상당히 촉망받는 배우였다. 그러다 그의 큰아버지 장수혁이 연쇄살인마로 드러나고, 이한의 아버지 장기혁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연쇄살인마 장수혁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장기혁이 실종되면서 거액의 돈이 같이 사라졌고, 그게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 돈의 행방이 장수혁에게 갔을 거로 추측하기에 이른다. 며칠 후 장기혁의 시신이 발견되고 장수혁은 다리에 총을 맞고 도주한다. 13년이 흘렀지만, 장수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분명 그가 죽었을 거로 여겼고, 살인마의 실종 혹은 사망으로 더는 연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한은 그의 가족사, 살인마 장수혁, 살인마에게 돈을 대준 아버지 장기혁 때문에 한동안 배우로 일하지 못했다.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과거를 지웠고, 이름까지 바꾸며 과거를 끊어내려고 했다. 그렇게 현재에 이르러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에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살인마 장수혁, 그가 다시 나타났다.
사건은 유민의 시골 생활에서 시작되었다. 글도 잘 써지지 않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방치된 시골집으로 간 유민. 아버지는 할머니의 마늘밭을 정리하면서 지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써지지 않는 글을 생각하며 머리 아픈 것보다, 아무 생각 없이 풀이 자란 밭을 정리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유민은 마늘밭의 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때, 풀이 엄청나게 자라있던 다른 부분과 다르게 사람 손이 닿았던 흔적이 있는 마늘밭의 한 구석을 발견하는데, 거기에 돈뭉치가 있었다. 그리고 살인마 장수혁과 마주치고 육탄전을 벌인다. 곧 마을은 마늘밭의 사건으로 소란스러워지고, 연인인 이한에게 말도 안 하고 내려와 있던 유민은 그때야 이한과 통화하면서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한다. 바로 유민에게 내려온 이한은 당분간 유민과 같이 지내기로 하는데, 유민은 이한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점점 수상한 사람들은 늘어난다. 연인인 이한과 과거의 모든 상황을 아는 신 경장도 다 사실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이한은 경찰이 장수혁을 잡기 전에 자기가 꼭 대면하고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왜 우리 아버지를 죽였냐고 따져 묻기라고 할 건가. 아니면 두 형제 사이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자기 인생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다시 나타난 거냐고 원망이라고 하려고 그런가. 어쨌든, 유민의 마늘밭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생각과 목적으로 이 상황을 위태롭게 건너가고 있었다. 각자가 아는 진실과 위선은 뒤로한 채, 현재의 목적에 집중하기 시작하는데, 누가 하는 말이 100% 진실에 가까운지 궁금하긴 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흐름으로 소설의 결말까지 닿게 되는데, 마지막에 다다를 때 나는 유민의 선택이 조금 의외였다. 모든 진실을 다 알고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읽었다. 이걸 사랑이라고 앞세워서 판단해야 하는 건지, 정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건지 어렵더라. 사랑이라고 해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 핑계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미스터리 로맨스라는 소개에 솔깃하긴 했는데, 딱히 긴장감이 높지도 않았다. 사랑이 중심이 되어 달콤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좀 부족했다. 서로 사랑한 이들이 선택한 결말이라는 것 정도, 우리는 사랑으로 상대방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남아 있다. 그냥 딱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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