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영 연대기’의 마지막 작품이 출간되었다. 눈앞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서도 아무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열한 살 하영의 표정이 섬뜩했는데(『잘 자요, 엄마』), 그 아이는 자라서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서 많은 독자의 요청에 답하듯 그 이후 하영의 청소년기를 이어서 보여줬다(『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그래서? 미성년자였던 그 아이의 심성은 거기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했다. 언제까지나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한 미성년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성인이 된 하영은 앞선 출간작에서 확인했듯이 악이 가득한 인간으로 보였다가도, 선한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기도 했다. 악의 근원이 하영의 아버지일까, 아니면 자라면서 익숙해진 습관 같은 것일까.
성인이 된 하영은 미국으로 떠난다. 하영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부모의 경제적 지원도 받지 않았다. 그런 현실이 뉴욕 생활을 더 힘들게 했다. 카페의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뉴욕의 높은 물가와 월세를 감당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유명한 아트센터 대표로부터 제안받는다. 자기 딸 세나와 친구가 되라고, 자기에게 세나의 일상을 알려주면 된다고.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게 가능할까 고민할 사이도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하영에게 관심을 두고 먼저 카페로 찾아오는 세나와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돈이 생기니 일상이 여유로워진 하영도 이 일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세나의 엄마는 왜 감시하듯 딸을 지켜보는 것인지, 세나의 몸에 있는 흔적은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렇게 지속될 수 있는지.
세나가 친구라고 카페에 데리고 온 아이들을 본 그날, 세나의 친구가 하영에게 무례하게 굴었고, 세나는 응징하듯 그 친구의 애인을 지하철에 떠밀어버렸다. 그 장면을 하영이 목격했다. 하영은 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기 주변에 떠도는 죽음의 냄새, 죽음을 도구처럼 휘두르는 사람들의 체취를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어쩌면 세나는 자기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영은 수시로 자기 귓가에 속삭이는 죽음의 목소리를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서 떠났다. 조용히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그림의 재능을 찾아내고 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운이 좋았는지 첫 전시회를 크게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세나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날,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나고 하영은 또 한 번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
여전히 냉혹한 모습으로 죽음을 일으키는 주인공의 자리에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하영은 선함이 있으면서도 언제나 악함이 먼저 그 힘을 발휘하곤 한다고 여겼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많은 죽음의 한가운데 있던 하영을 생각하면,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예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어떤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다. 악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게 만드니까. 하영이 세나를 보면서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을 받았을 때, 비슷하게 이유를 찾게 된다. 하영에게 죽음을 행하게 했던 아버지, 세나를 조종하듯 감시하며 기대에 부응하게 하는 세나의 엄마. ‘너를 위해서’라는 꼬리표를 달고, 엄마니까 믿고 엄마니까 의심하지 않게 하면서 따르게 하는, 주문 같은 말에 빠지게 되는 거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할 사이도 없이 엄마가 ‘갖고 싶어?’라고 묻는 순간 세나는 자기가 그걸 원한다고 믿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란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함에 부응하듯, 엄마가 만드는 완벽한 인형으로.
태어나는 순간 탯줄을 끊었음에도 여전히 아이가 자기 품에 있어야 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라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328페이지)
앞서 출간된 두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다양한 모녀 관계가 등장한다. 엄마에게 느끼는 죄책감, 딸에게 느끼는 미안함 같은 마음이 선경이 의뢰받은 상담 과정에서 들려온다. 이 부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부모와 자식이 단순한 관계가 아니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답을 찾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마음의 상처가 말 한마디로 치유될 수 없듯이, 이미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도 그 자리에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듯이, 우리는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온전히 치유될 수 없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이 시리즈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인간으로 자라는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 마냥 평범하고 다정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하영은, 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상처받으며 자라고 있는지, 어떻게 그 상처를 회복하고 부모의 폭력을 끊어내면서 혼자 서는지 보여줬다. 살아가는 매 순간 이렇게 부딪히고 상처받고 또 싸워가면서 혼자 서는 법을 배우는 게,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2010년 처음 독자 앞에 나타난 하영.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게 했던 작가는, ‘하영이는 이렇게 자랐는데, 어때?’라고 묻는 것처럼 이렇게 어른이 된 하영을 또 독자 앞에 등장시켜 지켜보게 했다. 글쎄, 결말을 보니 하영은 잘 자란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 마디로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어쩌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삶은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삶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당연하고, 성장하면서 가정과 학교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면, 성인이 된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인연으로 또 다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아닐까? 소설 속 결말의 하영의 모습이 이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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