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작정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프리다 맥파든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다. 이번에는 『네버 라이』다. 분량은 적은 편이라 그만큼 빨리 읽히기도 하지만, 앞서 만났던 작품들과 사뭇 다른 주인공의 등장으로 ‘악인의 전성시대’ 같은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오는 이야기는 3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게 하면서, 처음부터 범인 추적에 열을 올리게 한다.
결혼 6개월 차 부부 이선과 트리샤. 이 부부는 맨해튼을 떠나 교외에 집을 구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와 약속하고 어떤 집을 보러 갔는데, 네비게이션도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곳에 있는 저택에 가까운 집에 다다른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는 아직 오지 않았고, 폭설은 내리고 있고, 추위를 피하고자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 어쩌다가 이런 집이 매물로 나왔을까. 집안을 살피던 이선과 트리샤는 내부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놀란다. 단순한 매물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3년 전에 실종된(이미 죽었다고 판단되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 헤일 박사다. 죽은 사람의 집을 사도 되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우선은 배고픔과 추위를 달래는 게 우선이다. 두 사람은 집안을 살피면서 남겨진 음식을 먹기도 하고, 벽난로에 불을 지펴 집안의 온기를 채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헤일 박사는 사라진 지 3년이나 되는데, 그동안 이 집은 계속 비어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남은 음식이 이 집에 남아 있었다. 이거 무슨 일인가.
몸이 떨리는 이 긴장감은 단순히 추위 때문은 아닌 듯하다. 집 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꺼림칙한 기운이 맴돈다. 마치 누군가 이 집안에서,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기분이다. 뭔가 자꾸 시선이 따라붙는 것 같고, 벽에 걸린 초상화를 누가 손을 댄 것 같기도 하고. 트리샤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서 남편에게 말하지만, 이선은 그녀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말한다.
3년 전 헤일 박사는 이 저택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상담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썼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헤일 박사의 상담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PL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로 큰 사건을 겪고 그 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EJ는 자기애가 넘치는 인물로 인격적으로 큰 장애를 안고 있다. 피해망상 환자 GW는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며 괴로워한다. 이들 모두 헤일 박사와 꾸준히 상담했지만 금방 좋아지지 않는 듯했다. 헤일 박사의 애인 루크는 헤일 박사가 실종되자 그녀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읽으면서 내용이 현재와 과거 사이를 오갈 때마다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굳이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과거의 헤일 박사와 환자들, 현재의 이선과 트리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 사이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헤일 박사가 상담 내용을 기록할 때마다 환자 이름을 이니셜로 적은 것을 떠올렸다. 실명이 아닌 이니셜, 그녀가 책에 상담 사례를 담으려고 일부러 실명을 숨길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을 거다. 소설의 초반부가 조금 지났을 때, 나는 범인을 확신했다.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에 이 사람이 분명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3년 전과 지금, 연결고리가 이어진 사람은 단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나의 확신은 의문이 되어 갔다. 아닌가? 저자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등장인물의 특성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 것인지 예상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물론 의심은 계속 이어졌고, 그 의심 속에서 또 다른 이유와 상황으로 범인은 밝혀지지만, 뜻밖의 인물이었다. 아직 추리소설을 더 읽어야 점쟁이 빤스를 입을 수 있나 싶기도 하면서, 범인으로 밝혀진 인물의 인격에 헛웃음이 나는 걸 보면, 역시 세상에는 갱생이 안 되는 나쁜 인간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 와중에 선한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힘으로 보면 역시 악이 선을 이기는 게 되는 건가?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교외의 저택이 배경이 되면서 음산함과 공포는 더욱 커진다. 이선과 트리샤 두 사람 모두 이 집에 처음 온 것일 텐데, 의외로 의연하게 이 집을 편하게 살피면서 꼭 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의심스러웠다. 트리샤는 이 집이 주는 분위기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집 안의 이곳저곳을 확인하듯 하나씩 열어보는 게 수상했다. 한밤중에 헤일 박사의 초상화를 걸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마치 조금 전까지 이 집안에 사람이 머물렀던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폭설에 고립되듯 갇힌 두 사람이 무사히 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헤일 박사는 실종일까 사망일까. 갑자기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알 듯 모를듯한 단서의 조각들을 어떻게 맞춰야 이 소설의 결말이 완성될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건 당연했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만, 누구도 그 거짓말에 완벽히 속지 않는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340페이지)
우리나라에서의 출간 기준으로 보면 이 작품은 프리다 맥파든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아직 『핸디맨』은 못 읽었고(곧 읽을 예정), 그다음 출간작 『하우스 메이드』를 읽었을 때는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하우스 메이드 2』를 펼쳤으나, 시리즈의 첫 작품을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다. 어느 정도 기대치를 내려놓고 읽어서 그런지 『더 코워커』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저자의 어떤 작품이든 가독성은 뛰어났다. 읽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저자의 작품을 계속 읽어오면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주인공의 삶의 자세가 악인인지 의인인지 알 수 없이 흘러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냥 이기적이고 나만 아는 악인의 탄생을 보여준 듯하다. 『하우스 메이드』의 밀리의 범죄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이유였다고, 『더 코워커』내털리나 돈 쉬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었지만, 이 소설의 범인은 그냥 나쁜 인간인 거였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매 순간을,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습관이 저절로 생기는 건지도 모르지. 에휴, 세상 왜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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