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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듭의 끝
  • 정해연
  • 15,120원 (10%840)
  • 2025-05-28
  • : 9,533



종량제 봉투를 열고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돈을 주고 샀는데, 이왕이면 알뜰살뜰 쓰레기를 목구멍까지 가득 채워서 버려야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 것 같았다. 이것저것 다 채워 넣은 쓰레기봉투는 잘 묶이지 않았고, 결국 투명테이프로 쓰레기봉투 끝을 붙여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는 아니다 싶어서 다시 쓰레기를 몇 개 꺼내고 묶어서 버렸다. 쓰레기봉투 디자인을 괜히 그렇게 만든 게 아니었겠지. 봉투 끝을 잘 묶어서 쓰레기가 쏟아지지 않게 버리라고, 쓰레기를 넘치도록 채워서 투명테이프로 붙여 절약 정신을 증명하라는 게 아니었을 거다. 매듭을 잘 묶어서 버리는 일,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 중요했다. 그 중요한 방식이, 이 소설 속 두 모자는 대조적이었다.


박희숙은 성공한 사업가다. 혼자서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으로 걸어온 길 끝에 사업가로서의 정점이 눈앞에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외국으로 화장품 판매의 길을 열 것이고, 이대로 잘 풀린다면 이 회사는 자신의 완성품이면서 동시에 아들 최진하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 아들에게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유일한 자식이라고 너무 감싸 안아서 키웠던 진하는 엄마의 돈만 믿고 살았다. 회사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살았다. 정신 차리기를 바라고 지방 소도시인 재선시로 보냈지만, 어느 날 진하는 사람을 죽였다면서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박희숙의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어.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나대지 마. 내 뒤에 어린애처럼 숨어있어. 넌 그러면 된 거야.” (187페이지)


재선시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화재 현장에서는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고, 담당 형사 이인우는 이 사건을 추적하던 중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절연에 가까운 어머니는 한 번씩 인우를 찾아온다. 아들은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도 봐야겠다는 마음인지 꾸준히 찾아온다.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때의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성장한 인우는 어머니를 의심해 왔다. 아버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맞닥뜨린 인우는 어머니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화재 사건을 수사하면서 박희숙과 최진하 모자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거로 의심하던 인우는 아직 이 추리를 완성하지 못했다. 의심을 사실로 증명하려면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지. 인우는 모든 의심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수사에 매진한다.


이미 소개 글에서도 나왔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아들을 감싸기 위해 엄마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안다. 내 자식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결심이 앞선다는 것을. 그러면? 살인자인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지 않으면, 그 이후 아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은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가 이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든, 엄마가 그 살인을 뒤집어쓰든,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서 본인이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게, 나는 너무 어려워 보인다. 세상 더없이 따뜻하고 완전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모성이란 게, 어긋난 방식으로 작용했을 때 어떤 결말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재미는 단순하게 사건의 발단과 의심, 사건 해결이 말하는 진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부모의 마음, 모성이 만드는 비극적인 결말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하면서, 모성의 헌신과 성립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기도 한다. 솔직히 마지막 반전에서 보여준 진실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까지 해서 내 자식을 지켜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몇 번을 되묻기도 했다. 이런 진실, 모성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러면서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라면? 내가 이 상황 속 엄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내 자식을 감싸주고 위로하며 잘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이런 선택은 못 할 것 같다. 박희숙과 최진하, 이인우 형사와 그의 어머니, 두 모자의 사연과 사건 해결 과정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계속 듣고 있자니 부모로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마음만 남는다. 만약을 상상하며 어떤 모성을 발휘하고 싶은지는 독자 개인의 몫일 테니.


“네가 날 의심해도 괜찮았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30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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