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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이브
  • 정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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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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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서둘러 아침 출근길, 등굣길을 준비했는데, 직장에서 한창 일하던 김혜정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무너졌다. 딸이 등굣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말에 그럴 리 없다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닐 거라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딸의 시신을 확인하고 혼절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죽은 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 막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오는 신체에 웃음이 났던 딸의 몸이었는데, 딸의 가슴은 폭삭 내려앉은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뒤로 하고 현실의 문제는 해결해야 했다. 딸의 장례식을 치르고 멀리 보내주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이성과는 다르게, 그녀는 점점 딸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노균탁은 76세의 노인이다.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냈다.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핸들을 돌렸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차에 10대 여학생이 치여 사망했다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70대 노인인 운전하는 차에 10대 여학생이 사망’한 사고는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피해자의 장례식장에서 무릎까지 꿇은 그는 그 자리에서마저 거부당한다. 딸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만나지만, 피해자를 위한 보상 방안을 의논하는 방식에서조차 그의 의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줄거리를 알고 읽었음에도,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사건이자, 앞으로 많은 이가 초고령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조심하며 운전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나고, 누군가는 가해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처리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수습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남은 사람들은 마음껏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한 사람을 보내는 일을 정신없이 치러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는 걸 마주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 사망 후의 처리 문제가 있을 거고, 혹시나 질병으로 사망했다면 또 다른 문제를 처리해야만 한다.


죽음을 직면한 그 순간이 가장 슬플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것 같았는데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일들에 또 한 번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은 슬픔에 빠져있을 수조차 없게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찾아와 사과한다. 서로의 변호사끼리도 원만한 합의를 하지 못하자 가해자는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놓는다. 피해자는 그 공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만, 상대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주는 것 말고는 어떤 처벌을 내릴 수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혜정의 딸이 70대 노인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한숨만 푹푹 나왔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나도 모르게 선입견이 먼저 튀어나왔다. 노인이 운전하면 모두 사고가 난다? 아니다. 교통사고 발생을 알고 보면 고령 운전자의 사고보다 다른 운전자의 사고가 더 건수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고령 운전자의 사고 요인이다. 운전하면서 사고가 일어날 요인들을 먼저 확인하고 조심하며 단속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혹시라도 운전에 불안 요소가 늘어난다면 면허증 반납이라는 제도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면허증 반납이 답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고령 운전자가 운전하면서 생길 불안 요소를 낮출 수 있다면 면허증 반납도 하나의 방법이긴 할 것 같다. 나부터도 택시를 타면서도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운전하시면 나도 모르게 안전띠를 더 단단히 매는 건 사실이다. 운전을 너무 불안하게 하셔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린 적도 있다. 소설 속 가해자 노균탁은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운전대를 틀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다. 그가 밟은 건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였다. 노균탁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던 나름의 사정은 있었지만, 이 사고 앞에서 그의 사정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고가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다. 이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야 할 태도와 마음이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시아버지는 70대 중반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운전했을 정도로 운전에 베테랑이었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시면서 승용차와 트럭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서 운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7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눈이 불편해지시고 농사를 정리하면서 집안의 모든 차도 처분했다. 시골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도 본인이 운전하면서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자 과감히 차를 정리하는 걸 보고, 위험 요소를 안고 불안하면서 운전하고 사는 것보다 몸이 조금 불편한 게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노화는 도로 위에서 위험 인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노인은 운전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니 개인의 선택으로 운전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강요가 아니니 순전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마냥 수월하지도 않으니, 차라리 스스로 운전하는 것을 계속하려는 마음도 들 테다. 오늘 운전대를 잡고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내일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듣고 있자니, 계속 생각하자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반복으로 이 문제를 고여 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사회적 제도에 더 의지하게 된다. 면허증 반납으로 제공되는 금액의 변경이나, 노인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더 편한 시스템으로 변경되거나 하는 등의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시급하다는 생각만이 남는다. 나도 곧 노인이 될 테고, 지금처럼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살아가게 될 텐데, 단순히 나이 들어서 운전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 문제에서 빠져있을 수는 없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 만한 제도가 뭐가 있을지 계속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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