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좁은 집이 더 좁아지는 느낌에 살펴보니, 짐이 늘었다. 작은 방 하나가 짐으로 가득 차서 뭔가 자꾸 쌓여만 간다. 할인한다고 한꺼번에 구매한 음료수, 명절에 필요해서 미리 구매해둔 선물들, 중고 거래로 내놓으려고 얼마 전에 정리한 물품들, 여름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제대로 자리를 못 찾아줘서 헤매는 선풍기(아, 이 물건은 다시 자리를 잡을 사이도 없이 조만간 다시 거실로 나오게 되겠군. ㅠㅠ), 그리고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집안의 온갖 살림들. 하나씩 정리한다고 하는데도 변화가 없다. 뒤돌아서면 모든 게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들 정리해 놓은 것만 봐도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깔끔하던데, 비슷하게 한다고 하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한편으로는 그들의 방식을 다 따라하자니 게으른 내가 쫓아갈 수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정리도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알겠더라. 그래도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으니 어떻게 하긴 해야겠는데, 어쩐다.
요즘 내가 관심 두는 주제와 딱 맞아 떨어져서 홀리듯 집어 들게 된 책이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버리지 못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느낀 결론은 하나다. 눈앞에 보이는 뭐가 없어야 정리가 되고 깨끗하게 보인다는 것. 나름 필요해서 하나씩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텐데, 꺼내어 보면 그게 꼭 자기 자리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연을 듣고 있자니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이 공간에서 내보내야 하는 물건이 대부분이라는 해결책을 찾는다. 그 방법만이 해결이라는 건데, 그 결정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버리자니 아쉽고 갖고 있자니 짐이 되는 묘한 반복이 계속된다. 여러 번 고민해도, 아무리 다른 방법을 찾아도 답은 하나다. 버리는 것.
그럼 다시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 버리는 기준 역시 각자 다르다. 미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거나, 아쉽고 또 아쉬워서 오랜 시간 또 망설이거나. 이 책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가 나름 사정이 있는 정리가 되겠는데, 그중 압도적인 답답함은 「책벌레와 피규어 수집가의 신혼집 논쟁」이다. 제목만으로 이미 상황을 눈치 챘을 거다. 책이 가득한 여성과 피규어가 온 집안을 차지한 남성의 결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들이 결혼하려고 구한 집은 각자의 모든 짐을 가지고 들어가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서로의 짐을 줄이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성에게는 수집하듯 모았던 책이 많았고, 남성에게는 오랜 세월 애지중지 아끼면서 보살핀 피규어가 그 주인공이다. 여성이 고민 끝에 과감히 책을 정리하는 데 반해, 유리 진열장까지 맞춰서 피규어를 진열해 놓은 남자는 피규어 정리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급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피규어 보관을 부탁하지만 누구도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다. 여성은 남성이 피규어 정리를 미루자 함께 사는 일도 미루는 상황에 이른다.
평생 아끼던 물건을 버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그 유명한 말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실이다. “뭔가를 떠나보내지 않으면 새로운 걸 얻을 수 없는 법”(148페이지, 책벌레와 피규어 수집가의 신혼집 논쟁)이라는 말은 진리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하나의 선택이 다른 것의 포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는데, 물건 정리도 마찬가지다. 남성이 결혼을 앞두고 자기가 혼자 살 때의 환경을 100%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이 결혼이 완성될 것이다. 피규어 정리가 어느 정도 완료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다는 여성의 선전포고가 결혼을 두고 하는 협박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끼던 것도 때로는 놓아주어야 하는 위기가 닥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 양보해야 하는 부분도 생기는 게 인생이라고.
때로는 오래된 것들 속에서 추억을 느낄 수도 있지만(「버리지 못하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 그렇게 쌓인 것들 속에서 머물기만 하다가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일 될 수도 있다는 것. 오늘의 웃음만으로 단순하게 사는 듯한 동생이 오히려 머뭇거리는 언니에게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이, 언니에게도 틀에 박힌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 하는 시선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정리하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일에 머무는 건 아닌가 보다. 평생 엄마를 힘들게 한 아버지의 방에 침입(?)하면서 정리하고 찾아낸 것들로 이 가정의 새로운 관계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남편의 방」), 사라진 며느리의 방을 정리하게 된 시아버지의 일탈 같은 하루에 가슴이 뚫리기도 하는(「며느리의 짐정리」) 이야기에 정말 다양한 관계들이 있구나 싶다. 주인이 없는 방을 들여다보는 일, 그 방에서 찾아내고 싶은 이야기는 많겠지만, 결국 그 무엇도 찾지 못하고 빈 방의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 방의 주인과 물건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연결 고리, 세월의 흔적으로 이어지고 싶으면서도, 물건을 버리면서 의미 없는 감정과 관계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읽게 된다.
아들보다 가까이 사는 딸을 종종 부르던 엄마의 부탁은 정말 놀라웠다.(「쌓아두는 엄마」) 같이 살지 않기에 엄마의 집 구석구석을 살펴볼 겨를이 없던 딸은, 방 한 칸을 완전히 짐으로 가득 채운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지진이 날까 봐 비축해둔 식량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고, 그중 어떤 것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이었다. 도저히 한 사람의 식사로 처리할 수 없는 식품들을 나눠주고 폐기하기에 이르는데, 이렇게까지 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자기가 구입한 식품을 잊고 있다가 또 사기도 하고, 무슨 식품인지도 모른 채로 구입하기도 하는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기에 주인공의 엄마를 나무랄 수는 없는데, 이 정도로 쌓아두면 눈에 보일 텐데 왜 몰랐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불안한 마음에 눈앞에 뭔가 가득 쌓여 있을 때 안심이 되는, 뭐 그런 건가. 이런 거 보면 우리 엄마랑 비슷하기도 하다. 부족하게만 살아왔던 시절의 기억에, 겨울이 되기 전에 쌀과 연탄을 창고에 가득 채워 놨을 때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필요 없어진 물건을 가득 집어 들고는 봉투에 집어넣고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아깝다’는 말과 감정까지 함께 버릴 생각이었다. (25페이지, 못 버리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기만 하거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게 기억이든 시간이든, 물건에 사로잡힌 세월 안에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때로는 상처 받은 마음이기도 하고, 본인이 즐거웠던 흔적이기도 하다.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위기와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애매하게 붙잡고 있던 관계를 끊어내는 다짐이기도 하고, 후회하기만 했던 과거와의 이별이기도 하다. 뭐가 됐든 붙잡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버리는 방식이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몇 가지만 남겨두고 과감하게 버릴 목록에 넣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쓰레기봉투에 가득 담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 속이 시원해지더라. 마치 내가 쌓아두고 정리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 책 속에서 다 처리해주는 느낌이랄까. 나도 누가 와서 눈이 시원하게 다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버릴 것인지 놔둘 것인지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그냥 눈앞에서 사라지게 말이다. 마치 갈팡질팡하는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주는 것처럼, 정리되지 못하는 것들이 깔끔하게 제 자리를 찾아 놓여 있을 때,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된 것만 같은 착각이라도 좋으니까.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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