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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 11,970원 (10%660)
  • 2025-01-08
  • : 9,230


1940년대 1950년대에 태어나서 2025년을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시대에 익숙한 문화에 몸이 적응했고, 그렇게 살아오는 과정이 당연했겠지.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는 먹어가고, 그만큼 세상은 변화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나이 먹어가는 속도와 비례하듯, 점점 더 빨라지는 듯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저절로 알아지는 삶의 경험과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어려운 문화를 마주해야 했다. 현금이나 토큰, 승차권으로 타고 다녔던 버스는 이제 카드 한 장의 알림음으로 요금을 대신한다. 내가 버스 토큰 세대가 아니었던지라 이런 얘기가 나에게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매체로 보던 어떤 장면들은 나에게도 없는 경험이고, 내가 아는 현재의 또 다른 역사 같은 기분이다. 아마 오늘의 어떤 장면들은 훗날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소환될지 모른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낯선 경험과 비교하듯이 말이다.


실버 센류 모음집 첫 번째 작품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의 후속 작품이 나왔다. 그냥 편하게 펼치면서 웃어보고 싶었는데, 비슷한 내용의 구절이 여러 번 보여서 놀라면서도 우울했다. 우리 모두 생김새나 사는 곳은 달라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일상 곳곳에 놓인,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에 너무 익숙한 ‘셀프’ 문화. 음식점에서도 물과 추가 반찬은 셀프, 주유소에서도 셀프 주유, 학원에 가서도 출석 체크는 모바일로 셀프. 찾아보면 셀프 아닌 게 거의 없을 수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용하기 심란한 게 셀프 계산대가 아닐까?


셀프 계산대 앞

얼어붙은 사람들

죄다 할배들

(39페이지)


셀프 계산대

날 보고 다가오려

준비하는 직원

(93페이지)


할 줄 몰라요

가까이도 안 가요

셀프 계산대

(94페이지)


이 짧은 문장들이 왜 이렇게 슬프게만 들리는지. 사실 다이소나 마트 계산대는 이용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내가 고른 물건 바코드만 찍어 옮기고 계산하고 내 장바구니에 담아서 나오면 끝이니까. 하지만 나 역시도 이용하면서 처음에 많이 떨렸던 게 셀프 계산대였다(공포의 키오스크 말이다). 단순하게 커피 한 가지만 주문해도 되는데, 원두나 샷 등 추가 옵션을 고르라는 것도 어리바리하면서 잠깐 주춤거리게 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건 패스트푸드 셀프 계산대. 특히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의 주문은 무슨 옵션이나 추가가 그렇게 많은지, 소스 종류는 또 뭐고. 그냥 알아서 다 만들어주면 안 되나? 대학에 들어가고 처음에 힘들었던 게 시간표 짜는 거였는데, 패스트푸드 셀프 계산대 앞에 처음 섰을 때 기분이 딱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갑자기 일상의 모든 것이 셀프인 시대를 맞닥뜨린 게 아니라 서서히 변화하는 세상 속 셀프 문화였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들이 마주한 셀프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 놓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더라. 낯설고, 어렵고, 막막하고, 그래서 주문을 포기하고 뒤돌아서기도 하는... 아, 이 상황 이 마음이 너무 공감하게 되는 이 순간이, 슬프다.


이미 이 시리즈의 분위기는 알고 있기에 새로운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이 짧은 글에 공감하게 되는 마음의 떨림은 어쩔 수가 없더라. 모른 척하고 싶은데, 처음 듣는 말처럼 놀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나의 엄마가 살아가는, 몇 년 후 내가 살아가야 하는 노년의 일상이 이런 모습이라는 걸 미리 보는 느낌이다. 어른답지 못하게 늙어가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 책 속의 짧은 구절들은 어르신들이 경험한 삶의 해학이 그대로 담겼다. 마냥 무겁게 느껴질 법한 삶의 순간들을 재치 있는 문장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나이 드는 것도 막을 수 없고 노녀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도 않게 살아가야 한다면, 이렇게 유쾌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마냥 우울하게만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웃으면서 지내는 날들을 만들어야겠지. 진짜, ‘어쩔 수 없음’을 대하는 자세는 ‘긍정적’ 뿐인가 싶기도 하다.


들었던 것 같은데

알았던 것 같은데

했던 것 같은데

(79페이지)


늦은 오후에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로 심란했는데, 잠깐 이 책 읽으면서 우중충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엊그제부터 갑자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당장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무릎 보호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항상 놓인 자리에 있어야 할 무릎 보호대가 보이지 않자 여기 저기 집안을 뒤져가며 찾기 시작했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자 나에게 전화를 한 거다.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 짜증이 났는데, 짜증을 표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한숨부터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항상 자기가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두었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물건을 찾는 일은 종종 있었고, 엄마가 찾는 물건을 내가 찾아주곤 했다. 내가 지금 엄마 집으로 갈 수 없으니 이 분실(?) 사건을 해결해줄 수도 없고, 엄마의 아픈 무릎은 계속 아픈 채로 있어야 하니, 참 답답하다. 그만 찾고 집 근처 약국에서 새로 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나중에 다시 전화해보니 내일 새로 산다고 하면서 그냥 파스를 붙였단다. 아니, 약국이 먼 것도 아니고 집에서 걸어가면 1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사용하던 무릎 보호대도 못 찾고, 무릎은 계속 아픈 채로 있어야 하고, 내가 그걸 어디에 두었을까 하면서 머리 아픈 채로 오늘 밤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에휴. 진짜 한숨이 가득한 날들이다.


이 책 유쾌하고 웃긴데, 읽으면서 웃긴 했는데,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니 그냥 또 우울해지는 게 현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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