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는, 예뻐지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뛰어난 패션센스는 물론이고 성격도 미치게 매력적이다. 그녀의 단 한 가지 불만은 통통한 몸매. 이 몸 때문에 그녀의 자신감은 떨어지고, 매력과 재능을 꾹꾹 누른 채로 어느 허름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본사의 온라인 담당, 남들에게 얼굴 안 드러내고 일하는 자리에 배치된 그녀다. 시켜만 주면 누구 못지않게, 남들 앞에서 그녀의 전문성을 뽐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매일 간절히 소원을 빌지만,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매일 스피닝에 열중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예뻐질 수 있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자전거에 올라타고 열심히 달리려고 했는데, 미친 듯이 페달을 밟다가 자전거는 부서지고 그녀의 몸뚱이는 헬스클럽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히고,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탈의실로 갔다.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먼저라는 건 르네도 잘 아는가 보다. 그런데 이상하다. 탈의실 거울 속의 자신이, 너~~~~무 예뻐 보이는 거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가 있다니. 내가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다니?!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진 건가?’
이때부터 르네의 매력 폭발로 영화가 정말 재미있어진다. 우연히 쿠팡플레이에서 보게 되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개봉 당시에도 관객의 후기가 좋았나 보다. 날씬하고 예쁘지 않다고 <미녀는 괴로워>의 그림자 가수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가수가 노래를 잘하면 되고, 화장품 업계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능력을 뽐내는 일에 르네의 외모가 걸림돌이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랬다. 그녀의 능력을 보는 게 아니라, 그녀의 외모가 첫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이 아니어서 외면당한다. 덩달아 그녀도 주눅이 든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의 재능에 당당해지는 게 아니라, 외모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그렇게 빌어댔던 거지. 그러다 스피닝 자전거를 망가뜨릴 정도였던 그녀의 몸무게가,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든다. 그녀의 눈에만 달라 보이는 외모를 선사한 거다. 같은 몸, 같은 거울을 봤는데, 이거 뭐야. ‘나, 너무 예쁘잖아~!!!!!!’
자기한테 반했다고 생각한 남자를 데리고 비키니 선발대회 구경을 가자고 하는 르네. 남자가 묻는다. 혹시 비키니 선발대회에 참가하려고 그러는 거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요? 키 크고 날씬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출전할 때 르네는 입은 그대로 핫팬츠를 입고 참가하는데, 관객을 침묵하게 만들더니 바로 축제의 장으로 바꿔놓는다. 신나게 춤을 추고, 자기 몸이 가장 예쁘다는 자신감으로 그 무대를 즐긴다. 관객 호응은 최고였다. 나는 반전이 일어나서 르네가 우승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르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대회 관계자가 르네의 애인에게 와서 말한다. 진짜 우승한 사람은 르네라고. 르네의 매력을 발견한 거다.
“캄캄한 밤에 차 펑크 나면, 누구랑 있고 싶어요? 저 아가씨겠죠.”
애인이 기다리는 자리로 와서 르네는 말한다.
“사실 내가 우승이에요. 그리고 내 미모는 내가 알아요.”
아, 이 자신감 어쩔 거야. 너무 좋아 죽겠어~
다른 사람들은 르네가 미친 줄 알았다. 자신의 매력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의 당당함을 가진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 재킷의 단추는 터져 나와 떨어질 것만 같고, 허리 위아래로 튀어나온 살들은 감출 생각도 없이 몸에 딱 붙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본사로 들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이라니. 본사의 안내데스크 직원 모집에 당당하게 지원하고 합격까지 한다. 그 회사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얼굴이 된 거다. 르네는 이 일을 너무 즐기고 좋아하는데, 오히려 이 회사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입구에서 잠깐 주춤하면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왜? 왜 뷰티 회사(다른 회사도 그렇겠지만)의 안내데스크 직원은 뚱뚱하면 안 되는 거지? 일반적으로 예쁘다고 하는 얼굴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그 자리에 진짜 필요한 자격 조건 1순위가 외모여야만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암튼, 르네는 이 회사의 신제품 출시가 실패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의 생생한 의견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데, 이 모습은 우리가 진짜 봐야 할 매력이 무엇인지 증명하는 시간으로 만든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 자리에 필요한 인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외모가 아니라는 것, 세상의 눈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자기의 진짜 매력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르네 덕분에 실컷 웃고 나서 도서관에 갔다가, 너무 더워서 좀 쉬었다 가려고 들어간 어린이 자료실에서 읽게 된 책이다. 무슨 어린이책이 이렇게 두꺼운 걸까 싶어서 궁금했는데, 내용은 글자가 많이 없으니 부담 없이 읽어도 된다. 작가 재럿 러너의 실제 경험담으로 그려진 『뚱뚱한 기분』을 읽는데, 이 책 속에 또 다른 르네가 있었다. 뚱뚱한 외모를 가진,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은 주인공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진짜 우리가 보는 외모는 어떤 기준이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 윌은 뚱뚱하다. 그 외모에 어떤 불만도 없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게 먹으면 되는 일상에, 평소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윌의 외모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윌은 닉에게 “너 뚱뚱해!”라는 말을 듣는다. 많은 학생이 있던 복도에서, 큰 소리로 자기를 뚱뚱하다고 말하면서 닉은 사라졌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윌은 잠깐 숨을 쉬고 싶어서 화장실로 숨어든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수치심? 자기 몸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던가? 어디선가 윌의 몸을 두고 괴물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야, 괴물이야.
와아, 살아가면서 전혀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윌의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굶어야지, 하지만 배가 너무 고픈데? 안 돼, 돼, 이러면 안 돼, 넌 괴물이야, 먹으면 안 돼. 뚱뚱한 자기 몸을 미워하기 시작한 윌. 자기 옆의 친구들을 봐도 말랐고, 길쭉하고, 입은 티셔츠가 헐렁하고. 갑자기 자기 몸을 보니 여기저기 튀어나온 살들, 뚱뚱한 몸이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굶는다. 무조건 굶는다. 도시락을 싸갔는데, 절반도 먹지 않았다. 마치 원래 이렇게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집에서는 엄마가 드시는 현미밥을 먹었다. 피자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엄마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날씬한 엄마가 먹는 밥을 자기도 먹다 보면 날씬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윌이다. 먹는 횟수를 줄이고, 양을 줄이고, 그러다 점점 의식을 잃는다.
전혀 남의 몸을 의식하지 않고 살던 윌이, 자기가 뚱뚱하다는 말을 들은 후로 다른 사람의 몸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덩달아 우울해졌다. 내 몸이 그렇다. 늘 그렇듯, 지금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있다. 후회하느냐고? 음, 후회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맛있는 음식 찾아서 먹을 때는 너무 행복한데, 이걸 마냥 후회만 한다고 하기에는 행복하기도 하고 뭐 그런 건데, 아, 이 마음이 정리가 안 되네. 암튼 나는 지금 20kg 정도 감량해야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체중 감량을 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맛있는 건 너무 많고, 먹은 만큼 운동해야 하는데 운동은 하기 싫으니 체중은 계속 불어날 것이고. 내가 맛있게 먹고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여러 가지로 체중 감량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내가 잠깐 잊고 있던 게 있다. 윌처럼 남의 마른 몸을 의식하면서 비교했던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뭘 입어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 피팅 모델이 입은 게 너무 예뻐서 샀더니 큰 사이즈는 그 예쁜 모습이 없다. 아, 이래서 말라야 하는구나. 근데 내가 정말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연예인은 개그맨 이수지인데, 그녀가 너무 예뻐서 일부러 검색해서 기사를 찾아보고 싶을 정도인데, 그녀가 또 마른 건 아니잖아? 근데 왜 이렇게 예쁜 거지? 윌도 뚱뚱하다. 하지만 자기 외모가 괴물 같다고 여기게 된 후로 홀로 고립된다. 그동안 같이 잘 지내던 친구들도 자기가 뚱뚱하니까 싫어할 거로 생각하면서 멀리한다. 뚱뚱한 몸을 가리려고 더 크고 헐렁한 옷을 입는다. 윌이 좋아하는 줄스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렇게 윌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점심시간에도 식당을 벗어나 혼자만의 장소를 찾는다. 그때 전학생 마커스가 보드를 타고 나타나서 윌에게 말을 건다. 친구랑 얘기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커스를 보고서는 뭔가가 윌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너무 편해 보였고, 보드를 타는 모습이 너무 당당해 보였다. 아, 이거였나? 편안함과 당당함? 이렇게 자존감이 채워지는 건가?
단순히 뚱뚱하다는 한마디로 시작한 자기혐오는 점점 커졌다. 윌의 뚱뚱한 몸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자존감이 하락하고 시도조차 하기 전에 좌절을 먼저 느끼곤 한다. 해보고 실패하는 게 아니라, 안 될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시작하지도 않는 일이 빈번해진다.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의 나로 살아가는 거라고, 최대한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좋다고, 그러면 더 많이 내가 된다는 거라는 마커스의 말은, 아직 성장하는 어린이인 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매번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이럴까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한번 시험에 떨어졌으니까 이젠 안 될 거라고 좌절할 때마다, 이 뚱뚱한 몸을 남들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할 때마다, 내가 부족해 보여서 자꾸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다시 듣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오늘의 나’이겠지만, 또 ‘내일의 나’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다른’ 모습은 점점 더 나아지는 내가 될 테고.
내가 뚱뚱해진 내 몸에 우울해지는 것처럼, 조카아이도 공부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절망하곤 한다. 퇴직 후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옆지기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엄마는 아픈 몸에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고, 나 역시 지금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구도 항상 그 상태에서 만족하지 못하기도 하고, 오늘의 안정감을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르네가 다시 거울 앞에서 처음 자기의 뚱뚱한 몸을 보고 절망의 소리를 질렀던 것처럼, 자기 눈에만 보이는 변화를 애인이 알아채고 멀리할까 봐 약속도 취소해 버리고 숨어버린 것처럼, 그냥 자기 눈에만 보이는 부정의 시선을 떠올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게 나의 장점, 나의 매력을 더 확실하게 알아가는 일이다. 아, 진짜 르네의 그 말이 귓가에서 뱅뱅 돈다, 돌아. “내 미모는 내가 알아요.” 이거 얼마나 멋지고 자신감 있는 말인 거냐고.
“내가 해야 하는 건, 내가 나를 보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걸 계속 바꿔가는 것뿐이다.” (뚱뚱한 기분, 359페이지)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정말 강추한다. 르네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면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임.
책 <뚱뚱한 기분>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내 마음이 하락하려고 할 때 펼쳐보면 좋겠지만, 특히 아이들이 자신감과 자존감 회복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만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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