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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my
  • 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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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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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많은 감정을 갖고 사는 딸은 비단 화자인 ‘나’뿐만은 아니다. 나 역시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자식이니까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것에 더해 죄책감과 미안함까지 더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하나로 정해진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가 보여준 엄마를 향한 감정은 단 하나다. 엄마의 눈빛 하나로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의 고단함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믿고, 엄마보다 불쌍한 인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나’의 엄마는 자식을 고통 속에 던져 넣으면서도 자신이 힘들었다는 토로만 반복한다. 애가 징징거리니까 일하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묶어 놓고 일하면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식의 두 손을 묶어놓고, 엄마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했을까 싶지만, 자신의 상황이 힘들었던 것과 자식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공존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듯 성장해 온 ‘나’는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불법도 저지르게 되지만, 그것마저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보면서 참 강심장이구나 했는데, 이게 다 엄마에게 강하게 훈련(?)받으며 성장한 덕분인가 싶기도 하더라. 어쨌든, 좀 특이한 모녀관계인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면서 좀 더 묘하게 변한다.


모범생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나’는 모범생 연기를 하며 지낸다. 엄마는 시장의 형제축산에서 일하고, ‘나’는 사장님의 딸 변민희와 같은 반이 된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빨간색 mymy가 도난당하고, ‘나’는 변민희가 미화부장의 책상 서랍에 mymy를 돌려놓는 것을 본다. 아, 범인이 변민희였구나. 그날 이후로 실종된 변민희의 수색 작업은 난항을 겪지만, ‘나’는 이날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변민희 실종 사건은 살인사건인지 실종 사건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15년이 흐른 후, 갑자기 변민희의 시체가 발견된다.


변민희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몇몇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헛소문에 시달리면서 인생이 피폐해지지만, ‘나’는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그날의 일을 굳이 떠올릴 이유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고 취직하고, 밥벌이에 정신없던 와중에 엄마의 억지스러운 비위도 맞추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래서 변민희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았냐고? 이 소설 읽다 보니, 갑자기 일어난 살인사건이 흥미롭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느껴질 것도 같은데,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하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편으로 살아가는 이 모녀의 모습에 집중하며 읽게 된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는 듯하면서도 걱정하고, 엄마 때문에 불법도 저지른다.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엄마 역시 딸 하나 잘 키우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았다. 이게 사기인지 도움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뛰어들고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이 되었다. 그때마다 딸에게 요구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딸에게 징징거렸다. 이거 뭔가 바뀐 것 같다. 그 옛날, 일하는 데 방해된다고 징징거리던 딸의 손을 묶어놓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딸이 엄마의 징징거림을 듣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 어느 날의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이 모녀가 말이다.


“아무리 뒤져도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때 묻는 게 아니었어. 귀찮아도 갈았어야 했는데.”(233페이지)


어떤 잔인함은 너무 평온하게 표현되어 더 공포스럽다. 각자의 형편은 각자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이다. 오늘의 세상이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은 고맙기도 하지만, 그 도움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누구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할 세상과 사람을 책임져가면서 살아갔을 뿐이다. 그러한 삶의 과정이 전쟁 같아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 수 있나?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이, 그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 그저 무서웠다. 그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했던 것도 아닌데,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각자의 몫을 해내면서 한 사람의 죽음을 묻어버리는 일이 이렇게 쉬웠나 싶었다. 그 일로 누군가는 꿈에서 멀어지고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고통에 빠졌는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 없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앞으로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라고 외치면서 살아갈 것만 같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 방식이 이런 거라니, 좀 끔찍하긴 하다.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더 섬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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