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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님의 서재
  • 죽어가는 짐승
  • 필립 로스
  • 12,600원 (10%700)
  • 2015-10-19
  • : 1,223

 

 

 

 처음 읽은 필립 로스의 소설이다.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표현의 수위가 세서 깜짝 놀랄 정도로 도발적이라는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문화예술 다방면에 정통한 지적인 노교수가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소설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노교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마음껏 끌리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교수라는 직업 덕분에 강의실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러던 중 스물 네살의 콘수엘라 카스티요라는 여성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된다. 당시 교수의 나이는 예순 둘. 콘수엘라 또한 교수의 지성에 경외심을 느끼며 둘은 점점 깊은 관계가 되지만, 교수는 젊음으로 찬란하게 빛이 나는 여성 앞에서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한탄하며 여자를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나는 콘수엘라를 어떻게 잡아둘까? 생각만으로도 도덕적으로 모욕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존재해. 물론 결혼을 약속해서 붙들지는 않겠지만, 내 나이에 달리 어떻게 젊은 여자를 붙들 수 있을까? 자유 시장 섹스라는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사회에서 무엇을 대신 제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때부터 포르노그래피가 시작되는 거야. 질투의 포르노그래피. 자기 파괴의 포르노그래피. 나는 황홀했고, 나는 매혹되었지만, 나는 틀 바깥에서 매혹되었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밖에 내놓는 걸까? 나이지. 나이의 상처. 고전적 형식의 포르노그래피는 오 분 내지 십 분 정도 톡 쏘는 자극을 주다가 약간 희극적인 것이 되고 말아. 그러나 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이미지들이 극히 고통스러워.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질투를 미화해. 괴로움을 제거해 버리지. 뭐가- 왜 "미화할까aestheticizing?" 왜 "마취하지anesthetizing 않을까?" 글쎄, 어쩌면 둘 다겠지. 그건 대신하는 거야.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타락한 예술 형식이야. 그것은 진짜인 체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진실을 버려.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여자를 원하지만 누가 그 여자와 *을 하든 그 사람이 자신의 대리가 되기 때문에 질투는 일어나지 않아. 아주 놀랍지만 그게 심지어 타락한 예술의 힘이야. 그 사람은 대역이 되어,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거야. 그것이 가시를 제거해서 영화를 즐길 만한 것으로 바꾸는 거야. 보는 사람이 그 행위의 보이지 않는 공모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제거되는 반면 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그대로 유지돼. 나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신물날 정도로 자신을 잔뜩 채운 사람이나 얻는 사람이 아니라, 얻지 못한 사람, 잃는 사람, 잃어버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젊은 남자가 아이를 발견하고 낚아채 가겠지. 그 남자가 보여. 나는 그 남자를 알아. 그는 스물다섯 살의 나, 아직 아내도 자식도 없을 때의 나여서, 나는 그 남자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 그는 날것의 나,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한 일을 하기 전의 나야.
p.56-57


 

 둘 사이의 육체적인 관계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게 보여지는데, 그것이야말로 38년의 나이차를 가진 이 애달픈 관계의 핵심인 듯 하다. 젊은 육체와 늙은 육체. 삶과 죽음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의 섹스. 죽음은 애처로울만큼 삶을 향해 있지만, 젊음은 늙음을, 차라리 죽음보다도 더, 염두에 두지 않는 법이다. 처음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원숙한 지성을 지닌 교수에게 실려있던 관계의 무게가 점점 더 콘수엘라 쪽으로 기울게 된다. 


 

조지는 심지어 내가 추천서를 써주는 것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어. 이러더군. "선배는 이 여자애한테 늘 무력할 거예요. 절대 주도하지 못할 겁니다. 여기에는 말이죠," 조지는 내게 말했어. "선배를 미치게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늘 미치게 할 뭔가가 있어요. 이 연결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으면 결국 그 뭔가가 선배를 파괴하고 말 거예요. 선배는 이젠 단지 그 아이와 함께하고자하는 자연스러운 요구에 응답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병리적 현상이에요...............(중략)............ 그게 비위생적이라서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역겹기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사랑에 빠지는 거라서 반대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일한 강박, 그게 '사랑'이에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완전해진다고 생각하지요? 영혼의 플라톤적 결합? 내 생각은 달라요. 나는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완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부숴버린다고. 완전했다가 금이 가 깨지는 거지요. 그 아이는 선배의 완전성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이에요. 선배는 일 년 반 동안 그걸 통합하려 애쓴 거고. 하지만 그걸 몰아내기 전에는 절대 완전해지지 못해요. 그걸 없애거나 아니면 자기 왜곡을 통해 통합하거나 둘 중 하납니다. 그게 선배가 한 짓이고 선배를 미치게 만든 거예요."
p.121-123


 

  작가는 교수의 후배인 조지의 입을 빌어 말한다. 맛만 보고 즐기기만 하라고. 어째서 사랑이란 한심한 것에 빠져 스스로의 완전성을 무너뜨리느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알고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짓거리를 또 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자, 사랑의 힘이겠지. 차갑게 보이는 저 말의 뒷 면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받아들이는 어느 정도의 수용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라고는 절대 말 못하겠지만.


 위에 본문을 옮겨 적을 때도 *표를 사용했지만, 단어들이 너무 세다. 영어로 어떤 단어였을지 약간 상상은 가는데,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들이 겨우 그것들 밖에 없었을까? 물론 저 쪽에 비해 우리나라가 성적인 단어를 직접적으로 입에 올리는 일이 거의 없어서 어색한 느낌이 더 드는 면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굳-이 그런 속되고 의미도 좋지 않은 단어를 가져다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조금 의역해주셨어도 좋았을텐데. 고상하고 지적인 얘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지저분한 단어들이 읽기의 흐름을 좀 방해한 건 사실이다.


 늙어가는 육체와 사그라들지 않는 갈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남자의 처절한 절규가 들리는 듯 하다. 거리낌없이 내지르는 그 절규가 너무나 솔직해서 읽고 있는 내 마음 또한 무방비로 열렸다. 차갑고 깊으면서 어딘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든다.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하다.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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