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형식의 글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일까? 이것은 차라리 수필같다. 다만 글을 쓴 사람이 작가 자신이 아닌 가공의 인물일 뿐.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 수필을 쓴다면 그것은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수필이라고 해야할까?
질문을 하다보면 처음으로 되돌아와, 그렇다면 소설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를 묻게 한다. 물론 그것은 나따위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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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흰(색)이라는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반드시 백묵의 흰 색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색없음의 상태에 더 가깝다. 아직 아무런 색도 때도 입혀지지 않은, 혹은 어떤 색도 때도 입혀질 수 없는 순수. 죄없음. 삶과 죽음. 빛.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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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또 다른 책 『희랍어 시간』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던 '백묵'이라는 단어의 울림을 좋아했다. 발음할 때 느껴지는, 사실 울림이라기 보다는 삼킴과 닫힘에 더 가까운 그 소리. 백묵, 백묵, 백묵, 하는 소리. 칠판에 쓰여진 글씨는 쉽게 지워지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아서 허연 자국을 남긴다. 뚝 하고 반토막 나 날카로워진 가장자리가 새로 칠판에 닿을 때 짓이겨지며 잘게 부서져 내리는 가루들. 발치를 뒹굴고 있는 짧고 둥근 머리(들). 냄새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어떤 후각적인 매캐함. 이 모든 것들이 '백묵'이라고 하는 하나의 단어에 응축되어 있다고 느껴졌고, 그 느낌은 즉각적으로 슬픔, 좌절, 소멸의 이미지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를 사로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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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선 '달떡'이라는 단어가 나를 붙든다.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이는 태어난지 채 얼마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책 속 화자는 어느 순간. 이 태어나자마자 죽은 달떡같은 아이,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언니였을 사람이 되어 먼 도시를 헤맨다. 그 곳에서 그녀는 모든 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몸 속 마음 속 어딘가가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산다는 것은 귀한 것이다.
깨끗하게 살고 싶다.
201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