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데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고, 남인데도 무척 강하게 끌리는 관계가 있다. 말을 바꿔야할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라 밀어내고 싶고, 남이라 끌어당기고 싶은거라고. 어쨌든간에 관계라는 것이 밀고 당기는 인장력의 긴장감으로 유지되는 건 똑같아서 둘 사이의 시소를 받쳐주던 지지대가 사라지면 무너지기 쉽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가족이 남보다 오래 가는 것은 혈연의 지지대라는게 웬만해선 닳아 없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남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매일을 붙어있던 영혼의 단짝들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관계의 소멸을 맞곤 한다. 애초에 나와 타인 사이를 이어줄 탄탄한 지지대란 존재하기 어렵다. 공간은 물리적인 요소일 뿐이고, 작은 오해와 실금은 관계의 시소에서 먼저 내려 뒤돌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시소는 혼자 탈 수 없다.
아마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시소를 타고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뜻인 경우도 있고, 상대방의 뜻이기도 했고, 어떤 다른 것에 어쩔 수없이 밀려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든 마음 속 어딘가에 버려진 시소를 바라보는 느낌, 나 혼자 남아 반대편에 비어있는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그랬다. 아쉽지만 끝나버린 관계와, 힘들지만 견뎌내야 하는 관계의 교차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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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는 분이 모친상을 당했다. 그 분은 예전에는 명절이 아니면 집에 잘 내려가지도 않았었는데, 어머니가 암으로 1년간 투병하시는 동안은 무리를 해서라도 거의 매주 내려갔었다고 한다. 여건이 되면 가까운 데로 짧은 소풍도 가고, 안되면 집에서 같이 밥차려 먹고 TV보고 하면서. 평생을 자식노릇 제대로 못하고 살았는데 그나마 마지막 1년간 이런저런 작은 추억들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아직은 어머니 영정사진만 봐도 눈물이 흐르지만, 이제 더이상 고통받는 모습 지켜보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놓인다고도 했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로 뿔뿔히 흩어져 살던 세 남매가 같이 살기로 했다고 한다. 담담하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가 가슴에 자꾸 남는다. 엄마가 떠난 집에 다시 모여 자기들끼리 살게 된 세남매의 이야기가.
201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