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자의 입장에서) 남녀 사이에서 오는 긴장감은 기본적으로 섹스에의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굉장히 본능적이고도 비이성적이게도.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나 호감의 정도를 모두 떠나서, 일단 생물학적으로 나와 섹스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를 대할 때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행위 이전에는 관계에 긴장감을 유발하던 섹스가, 행위 이후에는(특히 서로 익숙해진 후에는) 상대를 무척 친밀하게 느껴지게끔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마치 타인이 아닌 또 하나의 나 자신으로 여길 만큼. 그리고 보통 이 지점 쯤에서 희극, 또는 더 많은 비중으로 비극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여기 아주 행복한 커플이 있다. 막 결혼식을 올렸고, 두 사람 모두 첫날밤을 위해 순결을 지켰다. 둘은 이제 아름다운 바닷가의 호텔에서 초야를 치르려고 한다. 사실 여자는, 섹스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한번도 남자에게 말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고, 자신이 남들에 비해 얼마나 비정상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의 고민을 알리 없는 남자는 여자에게 점점 다가오고, 여자는 어떻게든 견뎌 보려 노력하는데...
희극과 비극의 드라마를 충분히 겪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서로의 얼굴을 반쪽만 보고 결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긴장감이 제거되지 않은 관계에선 가면을 벗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라면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말다툼 같은 것이 남녀 사이에선 종종 일어나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맨얼굴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친구 사이라면 평생 절교에 이르렀을 가시돋친 말을 듣고도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껴안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나의 맨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더이상 완전한 타인이 아닌 또 하나의 나자신이니까. 내가 나에게 아무리 잔인한 말을 했어도, 나니까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를 유지하는데에는 사랑 말고도 서로를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서로의 맨얼굴을 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못했던 커플에게 단 한 차례의 드라마는 치명적이었다. 그 동안 그들이 주고 받았던 수많은 사랑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워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2016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