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하나비님의 서재
  •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 9,900원 (10%550)
  • 2015-10-03
  • : 2,116

 

책을 덮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도 일단은.
실실 웃음이 나고, 더워 죽겠는데도 뜨겁게 발열하는 오래된 노트북에 손을 올리는 일이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다. 이 책을 읽은 뒤 내 맘 속 무더위가 3.7도쯤 내려갔다. 그러니까 조금 즐거운 기분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지나간 여자를 벤츠를 타고 가다 만나는 재고물품 정도로 생각했던 진우는 그러나, 옛애인이 자신의 친구인 광수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 광수도 오랜동안 혼자 사랑해왔던 여자와 꿈에 그리던 결혼을 하고서도 예전에 그녀가 진우와 사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 쓰이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둘은 각자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밀란 쿤데라가 홍상수의 영화를 바탕으로 책을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사실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다른 작가를 떠올리는 것은 꽤나 게으른 감상법이겠지만, 어쨌든 이 둘이 떠올랐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하는 한 명의 여자와, 사랑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의 부산물인 질투와 시기로 눈이 먼 두 명의 남자라는 설정은 쿤데라를 떠올리게 하고, 그들이 찌질하고 유치하게 싸우면서 술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요물에 대한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숨기지 못하는 작가의 옹호가, 특유의 농담, 그리고 철학적 비유와 함께 버무려지면, 짜잔, 하고 김연수 스타일의 세계가 생겨난다. 이 곳에 낭만과 유머가 있다. 진짜로 존재한다면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할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유머를 적극 지지한다. 소설 안에서 잽을 날리 듯 쏟아지는, 뭔가 약간은 흐드러진 농담들에 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는 몰라도, 나에겐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 중 한사람이다. 깊고 진지한 목소리를 가진 작가이지만 가끔은 이런, 작가 자신만의 유머가 있는 이야기도 많이 써주시면 참 좋겠다.


2016년 7월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