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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님의 서재
  • 종의 기원
  • 정유정
  • 15,120원 (10%840)
  • 2016-05-14
  • : 48,144

단단하고 뿌리깊은 악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던 그간의 소설들은 펄펄 뜨거운 느낌이었는데, 이번 이야기는 좀 다르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체온이 내려가고 감각이 곤두서면서 시작되는 주인공의 사냥을 따라가며 나도 같이 피가 식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엔 용서받을 수 없는 惡이지만, 화자가 '나'인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헤집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나또한 주인공과 같이 무고한 여성의 뒤를 숨죽여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방문이라도 슬그머니 열라치면, 얼른 막아! 랄지, 도망가! 하고는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만다...... 1인칭 시점의 함정이다. 얼마나 극악한 존재이든간에 일단 들키지 않았으면 싶어서 심장이 조여진다. 특히 밤 중에 여자를 쫓아갈 때, 여자 입장에서 이 사이코패스에게 부디 희생되지 않기를 하고 바라면서도, 조심조심 따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범죄자의 입장에서 들켰다! 하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린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상위 레벨이라는 프레데터, 즉 포식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공이 사람이 죽는 것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겁먹은 모습에 모종의 성적 쾌감을 느끼는 장면은 소름이 돋는다. 겉으로 봤을 때 주인공은 수영선수 출신의 강인한 체력에 로스쿨에 합격할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인간이라는 종이 우수한, 그러니까 도덕성이나 윤리 같은 만들어진 관념들은 모두 버리고 오직 생존에 더 적합한 성질만을 가지고 진화한다면 이 사이코 패스의 유전자가 다른 어떤 평범한 유전자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도 그런 식으로 끝나게 되고.


중간에 일기 형식으로 들어있는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이 갖고 있는 큰 어둠을 두려워하는 양가적인 마음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다섯째 아이'나 '케빈에 대하여'를 떠올리게 한다. 아마 관점을 바꿔 어머니의 입장으로 썼다면 상당히 유사한 소설이 나왔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근원과 깊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자식이기에 포기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관점에서 보는 악마성을 지닌 자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훨씬 끔찍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약간 아쉽다. 작가의 섬세한 장면묘사에 비해 주인공의 내면은, 스스로 사이코 패스로서 겪는 부조리하고 극악한 심리의 표현보다는, 어떤 조짐을 예감하고 자신을 통제하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노섞인 리액션에 더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좀더 세고 좀더 날카롭고 좀더 끔찍해야 할 것 같은데 뭔가 더 나와줘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최상위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에 비해 다소 젠틀한 모습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가족이 많이 나와서인듯 한데, 그런 의미로 2부가 나와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상당히 천천히 보는 편인데, 가독성은 정말 최고다. 7-8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다.

다음 책은 또 언제 나오려나.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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