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의료사회학 혹은 의료윤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들을 찾아보고 있던 중 눈에 띄인 책이다.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 당연히 괜찮지 않다라는 대답이 바로 내 입에서 터져 나오지만, 다시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미 우리는 만들어진 생명들을 일상에서 마주하며 산다. 유전자 조작식품, 복제하듯 태어나는 애완동물들, 좁은 축사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갇혀 지내는 소와 돼지, 닭들.. 이들 또한 만들어진 생명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일단 '인간 한정'인 질문이다.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는 생명과학의 발달은 이제 마지막 성역을 목전에 두고 인간을 시험하고 있다. 인간마저도 만들어 낼 것인가, 그렇게 하도록 둘 것인가.
"아이를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받아들이던 인간 생명의 근본조건을 무너뜨릴지도 모를 사건이다. 생명의 의미가 '하늘이 내려준 것'에서 '선별해서 얻은 것'으로 바뀌는 일이다." (57)
이미 임신출산과정에서 장애여부를 가려내는 산전검사가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모는 검사시행 여부에 대해 형식적인 권한만 가질 뿐, 관례적으로 의무적으로 이중삼중의 산전검사를 통해 장애여부를 확인하고 아이를 선별하도록 강제되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 저 하늘 나라에서 부모를 택하여 찾아온 이 생명을 우리 현대인은 감사히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도 개인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결정에 의해.
"여기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본래 생명을 중시하는 역할을 맡아야할 의학계에서 이토록 큰 갈등과 고통을 낳는 일이 초래하는 고뇌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선의라는 명목하에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의료의 발전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58)
'선의'라는 명목하에... 의료의 발전을 추진한다는 평가는 좀 점잖은 듯 하다. 사실 돈 때문 아닌가..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는 잦은 검사를 통해 낮은 의료수가를 벌충하려는 꾀많은 의사들의 돈벌이가 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당사자의 의견이 그렇게 의료현장에서 무시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강화는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의료의 효용과 혜택을 인정하면서도 지나치게 의료에 의존하는 사회를 염려한다. 하지만 다시 고민해봐도 '과도한 의료는 어째서 바람직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좀처럼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121)
의료의 목적이었던 치료를 넘어선 "강화", 이 강화를 위해 시행되는 과도한 의료는 우리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훼손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렇지. 우린 어느새 우리 몸의 건강 여부를 스스로 평가, 진단하기를 주저하고 무서워한다. 나의 몸이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 5분 진료 의사에게 일임하는 상황.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을 던져버리고 스스로 좀비가 되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 하늘이 내려주는 선물을 고를 수는 없다. 우리에게 찾아든 생명들이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 인식한다면 우리는 선물인 아이를 보다
"깊이 배려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이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랄 것이다. 아이의 타고난 특성을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더 깊이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은 이러한 삶의 방식과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128-129)
둘째 아이가 찾아왔을 때, 만약 우리나라가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나라라면, 우리 부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본적이 있다. 나는 과연 신의 선물을 버릴 수 있었을까. 오늘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눈을 들여다 보며 생각한다. 내가 널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자유와 주체성을 지키는 것은 매일매일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생명으로 새 생명을 맞이해 삶을 꾸려나가는 동안은 말이다.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 인간들의 선택은 엇갈리고 있지만, 그리고 그 선택에는 자본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하고 있지만... 끝끝내 인간들이 고민하길 바란다. 과연 그래도 괜찮을까에 대해. 그런 측면에서 시마조노 스스무의 책은 의미가 있다. 관련 서적이 많이 출간되어 담론과 토론이 형성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