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빙혈님의 서재
  • 레오나르도 다빈치
  • 이종호
  • 15,750원 (10%870)
  • 2025-06-27
  • : 66
2년 전 이종호 박사님이 쓴 전기 <아인슈타인>을 재미있게 읽고 리뷰도 쓴 적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인(全人)으로 잘 알려진 다 빈치의 전기인데. 시대가 크게 차이 나지만 이분도, 아인슈타인도 시대의 제약과 고정관념(인 줄도 몰랐던)을 과감히 깨부순 열린 지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자연과학과 공학에 두루 통달하신 저자의 솜씨라서 더욱 신뢰가 갔었고, 마침내 알찬 독서가 되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북뉴스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다빈치는 당대, 그리고 이후의 세상에 공히 공헌한 바 크고, 이 책에도 잘 나오듯 동시대 실력자들에게 두루 인정받아 큰 커미션을 받기도 한 일류 기능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평하길,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이 책 뒤표지, 또 p8). 저자 이종호 박사님은 150년 전까지만 해도 다빈치의 <모나 리자>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까지는 아니었다고도 합니다. 원자 이하의 세계가 돌턴 등의 과학자에 의해 알려지고 난 후 세상의 눈도 더 깨이는 쪽으로 변했는데, 이때서야 다빈치의 만능인, 슈퍼 천재로서의 면모가 더 확실히 밝혀져, 모나리자도 덩달아 재평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역시, 아는 만큼 보는 법입니다. 저자의 말씀대로, 다빈치의 시대에는 아예 "과학자"라는 직업 자체가 없었고 예술가는 기능공이라며 무시당했으니 너무 뛰어난 천재는 시대가 그를 감당 못하기에 저런 좌절감도 느끼게 되나 봅니다.

다빈치는 음악이야말로 시(詩. poetry)보다 뛰어난 예술인데, 그 이유는 한 번에 여러 음을 내어 조화적, 비례적으로 차원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어서라고 했습니다(p106). 서양 고전 음악의 확실한 장점 중 하나가 화성학의 발달인 걸 보면, 그는 기원전부터 그리스에서 기초가 다져진 이 화음의 매력에 대해 분명한 통찰을 갖고 있었던 듯합니다. 사실 화음을 구조적으로 꿰뚫고 듣기 좋은 곡을 만들려면 수학에 대한 소양, 적어도 어떤 감각이라는 게 있어야 합니다. 이어, 다빈치가 남긴 글에는 좋은 회화를 그리기 위해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이 나오는데, 이 문장이야말로 그의 빛나는 재능과 성취들이 대체 어느 지점에서 모두 연결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 책에서 자주 강조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사생아"입니다. 다빈치 자신도 사생아였으며, p139에 나오듯 밀라노 공이라는 지위를 제4대부터 장악한 스포르차 가문을 창시한 자가 프란체스코(1세)인데, 이 사람도 사생아였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 구간이 확실히 실력 위주의 시대였는지, 마치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처럼 나라의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 하극상이 빈번히 벌어져 객(客)이나 종(從)이 주(主)를 밀어나고 자리를 차지하는 풍조가 강합니다. 사생아라고는 하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성장과정에서 아주 큰 어려움은 없었고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자리를 잡은 편이었으며 그 자신의 재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재능의 방향이 달랐기에 성공의 과실 그 깊이와 폭도 달랐고, 다빈치가 그를 보며 자괴감이 들었을 법도 합니다. p142에서 저자는 다빈치 생전에 미완성이었던 청동상이, 그가 남긴 기록에 따라 뒤늦게나마 1999년에 완성된 사실을 전하며, 시대의 한계와 제약 때문에 못다 이룬 나의 꿈을 누가 대신 이뤄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조르조 바사리는 우리에게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데 p191에 나오듯 당대에 다빈치의 전기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p194를 보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그 자체였던 세례자 요한을 그린 그림도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거친 외모의 야인 이미지가 아니라 고급 주점에서 고객을 희롱하는 마담처럼도 보입니다. 사실 그의 작품들에서 성별이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와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립니다. 작품 안에 많은 수수께끼를 남겨 두었기에 그의 그린이 오늘날까지도 질리지 않고 계속 재해석되는지도 모릅니다.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 같은 이가 오늘날 덜 회자되는 건 구도의 엉성함, 피사체에 대한 다소 아쉬운 연구가 (현대인에게는)눈에 띄어서인데, 살바도르 달리는 테서랙트의 형태를 정확히 이해하여 그의 작품 <십자고상>에 표현하는 등, 진정한 천재의 재능은 여러 분야를 두루 꿰뚫습니다. 과학, 재능, 위인의 숨은 맥락을 깊이 천착하신 저자의 공력이 잘 드러나는 책이었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