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 (로버트 필립 著)
빙혈 2025/09/1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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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p264)의 가곡 <An die Musik("음악에게")>을 들어 보면 이 위대한 음악가가, 자신의 영원한 소명인 음악을 다루면서 얼마나 행복해했으며, 환희에 가득찼었는지가 귀에 생생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가사의 일부를 잠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하프에서 종종 흘러나온 한숨/너의 달콤하고 성스럽기까지한 화음은/내게 더 나은 시대의 하늘을 열어주었지/너, 사랑스러운 예술, 나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해!" 비단 슈베르트와 같은 천재가 꼭 아니라도, 평범한 우리들 역시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서 정서가 한껏 고양되며, 삶의 의욕이 새로이 충전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인간은 음악을 발명하여 삶의 영감과 희열을 스스로 얻어낼 줄 알기에 더욱 존엄한 존재입니다.
(*북뉴스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영국 공영 BBC 소속 예술 프로듀서이자 이름난 강연자, 저술가, 음반 평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 문명의 역사와 함께한 음악의 지난 자취를 톺습니다. 인류는 스스로의 삶을 풍요로이 가꾸기 위해 음악을 고안해 내었고, 음악은 당대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감성을 어루만지기 위해 알뜰히 발전해 왔습니다. 로버트 필립은 음악의 발달 과정 그 핵심을 세심히 짚으며, 음악이 어떻게 문명의 동반자 노릇을 착실히 수행했는지를 특유의 자상한 내러티브에 실어 독자들에게 이해시킵니다. 내용도 충실하여, 음악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평범한 우리들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고대에는 보통 4대 문명이 있었다고들 말합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가장 앞선 시기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지역들에 속합니다. p28 이하에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일찍이 나팔 모양의 악기가 출현했었으며, 이 악기가 어떻게 국가 행사, 중요 국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끌고 분위기를 고양했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이집트의 폐쇄적 지형과 대비되는 조건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정교한 현악기가 또한 발달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아랍의 음악하면 대뜸 떠올리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곡조는 바로 하프 등의 현악기가 빚는 섬세한 사운드에 크게 의존하곤 합니다.
p105에서는 중세에 활동한 힐데가르트 폰 빙엔을 소개합니다. 그녀는 악보 작성법을 정리하였으며, 직접 쓴 시(가사)에 곡을 붙여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명작을 남겼는데, 여성의 활동을 억압하던 당대 분위기에 맞서기도 했던 행적까지 잘 서술되어 독자의 관심을 끕니다. 15세기의 피에트로보노 부르첼리는 작곡에 능했을 뿐 아니라 류트 연주 솜씨도 대단히 뛰어난 여성이었습니다(p126). 저자는 이탈리아 인문부흥을 이끈 보카치오의 소설 <데카메론>까지 인용하며 이들의 음악 업적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음악은 많은 경우 극(劇. drama )과 일체가 되어 작동합니다. p165 이하, 챕터18에서는 극음악의 매력을 분석하는데, 우리는 보통 제바스티안 바흐의 Passion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17세기, 바흐보다 백년 앞선 시기에도 이미 하인리히 쉬츠가 수난곡의 한 모범을 만들어낸 바 있습니다. 또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는 마드리갈이라는 악극형식이 발달하여, 런던에서 악보집이 출간되기도 했다고 나옵니다. 이처럼, 외국의 선진문물은 주저없이 빠르게 수용하는 특유의 포용적 사회 풍조가, 이후에도 영국이라는 나라의 국력 토양을 형성했음을 좀처럼 부인할 수 없습니다.
p276 이하에서는 특히 자신이 속한 민족, 국가 등의 개성과 정서를 전면에 내세워 작품을 만드는 트렌드가 뚜렷이 형성되었다고 서술합니다. 19세기 전반, 특히 1848년 전후로 구체제를 탈피하고 제국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쇼팽도, 이전 세기에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되어 소멸한 조국 폴란드를 뒤로 하고 프랑스에 망명한 처지였기도 했고 말입니다. 드뷔시, 라벨 등은 프랑스 사람이었으나 스페인 토속 요소를 곡에 멋지게 담고 표현(p285)하여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p370에서 저자는 케이팝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 기원을 1990년대로 잡고 레게나 힙합 등 온갖 장르의 영향이 "고정관념 사이의 상호작용을 영리하게 이용하여" 담겼다고 평가합니다. 교육적이면서도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잡아채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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