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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억만장자의 거리
  • 캐서린 클라크
  • 18,000원 (10%1,000)
  • 2025-06-13
  • : 574
맨해튼 곳곳에 높이 솟은 마천루들은 이 세계의 경제적 수도가 이곳 뉴욕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하나하나의 상징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3년 영화 <킹콩>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는데, 이 책 p31에서 "약 15년 전 준공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이라고 한 건 2008년에 있었던 레노베이션 준공을 가리킵니다(캐서린 클라크의 이 책 원서가 2023년에 출간됨). 밴 앨런과 세버런스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들어간 당시의 마천루들은, 욱일승천하는 신생국 미국의 기세를 세계를 향해 과시했습니다.

(*북카페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 p43의 화보를 보면 해리 매클로우(Harry Macklowe)가 발주한 432 파크애버뉴 빌딩에 대한 사진이 있습니다. 해리 매클로우 본인이 홍보를 위해 킹콩 분장을 한 것도 우습습니다. 해리 매클로우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업으로 큰 돈을 번 사람이고 트럼프보다 몇 살이 많죠. 높은 건물을 짓는다는 건 부(富)와 성취의 표상이며,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대유하기도 합니다. 20세기 초 마천루의 아버지 중 하나인 H 크레이그 세버런스의 이름이 severance(절제)인 건 묘한 역설입니다.

p91에는 브래드 잭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친 프레드 트럼프의 법률고문도 지낸 사람이라고 합니다. 잭슨 역시 부동산 개발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으로, <풋루스>에 케빈 베이컨과 함께 나왔던, 키가 178cm 정도 되는 장신의 미녀배우 로리 싱어하고도 한때 사귀었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 페이지에는 그의 친구 중 하나로 마리오 쿠오모라는 정치인이 언급되는데, 이 사람의 아들 중 하나가 앤드류 쿠오모이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내내 거론되었지만 그 선을 넘지는 못했으며 이번에는 33세의 조란 맘다니라는 신인에게 패배하여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비즈니스맨들 중에는 혼자서만 일을 진행하려는 묘한 습벽을 가진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p132를 보면 해리 매클로우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이런 부자들은 증시에 자신의 회사를 공개하여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얻는 데에도 조심스럽더군요. 이 책에서 아주 자주 나오는, 예를 들면 p125 같은 곳의, CIM group(샤울 쿠바 등이 만든)에서 CIM은 대체로 Community, Infrastructure, and Mixed-use의 약자로 통하곤 합니다. CIM 입장에서는 저런 매클로우 부자(父子)의 태도가 대단히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p182 같은 곳을 봐도, CIM과 매클로우 측은 여전히 대립합니다(이 책에서는 "맥클로우"라고 일관되게 표기합니다).

크라이슬러라고 하면 이제 브랜드의 미국 내 인지도가 일본의 토요타나 혼다보다도 못할 지경입니다만 한때는 GM, 포드와 함께 미국의 살아숨쉬는 엔진으로 여겨졌습니다. p218을 보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크라이슬러 빌딩 모두 대공황기(1929~)에 지어졌는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미국 산업의 집요하고 부지런한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만 마천루가 이처럼 곳곳에 들어서면, 일단 많은 이들의 조망권과 일조권이 침해받는데 책 곳곳에 나오는 MAS라는 단체는 Municipal Art Society of New York의 약자입니다. 엘리자베스 골드스타인(p218)이 이 단체의 회장(president)였는데 그녀가 보고서에 쓴 우려의 성명은 일방적 도시개발의 문제점을 압축하여 나타냅니다.

건축은 예술의 일종입니다. 이 책에는 부동산 재벌들과 사업가들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여기저기서 등장하는데, 티에리 데스퐁(프랑스 디자이너), 히로시 스기모토(책에는 이렇게 표기되지만, 일본어로는 杉本博司[삼본박사]로 쓰므로 스기모토 히로시가 맞겠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인물이므로 surname이 뒤에 오는 관행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등의 이름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p303 이하에 나오는 이른바 스타인웨이 프로젝트에서 마이클 스턴과 케빈 멀로니 두 자본가가 내내 대립하는 모습은, 이런 대규모 건축 사업이 단순히 이권 다툼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 예술의 프레임에 대한 근본적 입장 차이가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책의 원제는 Billionaires' Row입니다. 보통 Avenue는 동서(가로), Street는 남북(세로) 방향의 길을 가리킨다고 하죠. row라고 하면 대개는 avenue와 동의어입니다만, 그 간단한 단어 안에는 세상 속에서 이권과 권력을 거머쥐려는 숱한 군상의 다툼과 이합집산, 네편네편 가르기 등이 압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의 경제 수도에서 벌어지는 돈의 전쟁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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