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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이단자의 상속녀
  • 엘리스 피터스
  • 15,120원 (10%840)
  • 2025-06-30
  • : 215
캐드펠 시리즈에는 이처럼 중세의 치열한 신앙, 교리 논쟁이 들어가서 더 흥미롭습니다. 에코의 <장미의...>에도 거의 생사를 걸다시피한 논쟁이 종파 사이에 이뤄지는데, 중세인들은 이처럼 죽음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인간 존엄의 무게를 결정한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질병, 기아, 전쟁 등으로 워낙 사람 목숨이 파리같이 사라지기도 하다 보니 피안(彼岸)에의 응시가 그만큼 큰 비중이었다는 소리인데, 현대인들은 위생 상태의 개선, 식량난의 해소 등으로 현생 자체를 즐기다 보니 저런 논쟁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조선 시대의 예송(禮訟)을 구경하는 분위기라 할까요. 하지만 중세의 구조에 관심 가진 이들에게는 이런 살벌한 말싸움이 너무도 재미있습니다. 여기에 미스테리까지 들어갔으니...

(*문충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책 p124에 나오듯이, 악마조차도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보편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죄의 개념을 이렇게 구성하니 원죄에 대해서도 오늘날 정통파 기독교의 입장과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p132)는 오리게네스보다 한참 뒤의 사람이며, 원죄론을 정초한 교부 중의 교부인데 그런 아우구스티누스조차 오리게네스의 주장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이론을 만들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캐드펠의 시대(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에 오리게네스의 주장을 함부로 인용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이단시할 수만도 없는 게, 어쨌든 그 역시 교부(敎父) 중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일레이브와 거버트 의원 사이의 대립은 이단이라는 민감한 이슈가 개입하여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또, "여차하면 웨일즈로 넘어가요!(p141)"라고 포추너터가 일레이브에게 충고하는 것도, 이 캐드펠 시리즈가 영리하게 북서 잉글랜드로 배경을 잡은 이유를 잘 설명하는 하나의 예입니다. 

여기서 캐드펠이 일레이브를 치료하고 돌보는 방식도 마치 <장미의...>에서 배스커빌의 윌리엄이 아드소를 잘 살피는 장면들과 닮았습니다. 물론 나이가 지긋한 주인공이 아직 미숙한 젊은이를 이리저리 케어하는 건 어느 문예에서나 나올 수 있는 설정이며, 그만큼 주인공 캐드펠이 능력 있고 원숙한,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이 더욱 인상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워낙 단단한 머리를 가졌으니 오래 남는 후유증은 없을걸세.(p159)"라고 캐드펠이 일레이브에게 말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단단해야 내용물이 더 잘 보호되나 봅니다. 그럼요.

그리고 저기서 캐드펠이 "이제 몸에 자신만의 흔적이 남은 셈이네."라고 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합니다. 역전(歷戰)의 용사들에게는 몸 여기저기에 흉터가 남는데, 물론 보기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흉터는 다른 누구의 몸에도 없는, 자신이 그만큼 세상을 치열하게 산 흔적과 증명이 되기 때문에 영광의 흔적이요 chronicle입니다. p198에 묘사된 제번의 꼼꼼한 습관, 일처리 스타일, 그리고 말끔히 면도된 얼굴 등은 이와는 대조를 이루며, 물론 그 또한 앞으로 제번이 어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과업의 달성에 이바지할지를 암시합니다.

중세에는 또한 장인(匠人)들이 대접을 받던 시대입니다. 꼼꼼하게 만들어진 각종 가구, 장치 등은 사람의 노고를 덜어 주며, 치밀한 기능성으로 인해 지적인 노동의 효율성을 크게 올려 주기도 했습니다. p288을 보면 제번과 조카 포추너터의 협업으로 전에 없던 멀쩡한 책궤가 제 기능을 하는 걸 보며 독자의 마음이 다 뿌듯해집니다. p31를 보면 여전히 흐트러진 게 없어 보이지만, 모두를 뒤흔들어 놓은 그 끔찍한 교란상은 이제 캐드펠의 노련한 손길 끝에 마무리됩니다. 질서의 회복만큼 확실한, 이단에의 단죄는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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