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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
- 정희승
- 15,300원 (10%↓
850) - 2025-02-12
: 260
제목부터가 너무도 충격적입니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정신과 전문의인 한혜성 조이의원(남가좌동) 원장의 추천사가 실렸는데, 오랜 기간 작가님을 치료해 오신 경험, 기억에서 비롯한 따뜻한 격려가 담겨서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우리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바는, 작가님이 어디까지나 피해자라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여 자신을 포기, 타락시키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운 작가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작가님의 연령대를 감안하면 아직도 연탄불로 난방을 해야 하는 가정이 많을 때입니다. p41을 보면 "시골에서 이 집 하나만 뚝 떼어서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1980년대 초 목동은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가 무시무시할 만큼 들어선, 서울 신흥 중산층 거주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었습니다(지금은 그저 중간계층 밀집지). 이런 데서 혼자 가난한 살림을 살았으니 그 소외감과 좌절감이 얼마나 심하셨겠습니까. 아무튼 작가님은 어려서부터, 바쁜 엄마 대신 연탄불 가는(=바꾸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모든 폭력이 다 혐오스럽지만 특히 저는 밥상을 엎는 걸 가장 싫어합니다. 저는 저 혼자 밥상을 차려도, 뜨거운 냄비를 들고 오다가 발에 뭐가 걸려서 넘어진다거나 하면 그순간부터 개인적 악몽이 시작됩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진 것도 아깝지만, 음식물이란 제때 사람 입 안으로 들어가야지 다른 곳에 퍼지면 그 뒤처리가 너무도 힘듭니다. 그 냄새 하며, 더렵혀진 주변 하며... 제가 스스로 차린 밥상도 이렇게 수고스러운데, 다른 사람이 차려온 밥상을 엎는다는 건 그 사람의 인격을 정면으로 모욕하는 짓입니다. p35에, 작가의 부친이 밥상 엎는 장면이 나오는데, 독자로서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밥상 엎는 장면에서 화가 났다고 했는데 사실 이 책에서 끔찍한 장면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 책에 서술된, 그 부친의 딸에 대한 폭력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페이지를 차분히 넘기기 어려울 만큼입니다. p51 이하에는 빨랫줄 등을 써서 자신의 방에 아빠가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막을 만드는 어린 작가님의 눈물나는 노력이 나오는데, 성인 남성의 완력이 그 정도의 약한 차폐를 걷어내지 못하겠습니까. 너무도 가슴 아픈 장면이고, 이 어렸을 때의 자세한 경험까지(폭력이야 오래 기억에 남지만, 그 전후 사정은 그에 비하면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서술하시는 걸 보면 얼마나 당시 상황이 지옥 같았겠는지가 상상되어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p62를 보면 작가님은 서서히 자신감 있는 아이로 변합니다. 커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아이들도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데, 애네들도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폭력을 가하는 사람만 나쁜 게 아닙니다. 어떤 나쁜 인간들은, 이 사람이 폭력 피해자라고 일단 소문이 나면, 괜히 그에게 접근하여 어떤 우월감을 느끼려 애 쓰고, 나도 그 가해의 대열에 가담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는 걸 고맙게 여기라는 듯 우쭐댑니다. 이런 자들은 직접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보다 더 악질이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작가님 남편분도 정말 멋있는 사람입니다(p97). 사연을 다 들으시자 살짝 표정이 변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이며 확률적으로 천만분의 일도 안 될 만큼 귀한 인격자입니다. 이게 다, 그만큼 내 여자를 사랑해서입니다. 예전에 김보은씨 김진관씨 사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솔직히 저 같으면 절대 저렇게 못합니다. 부끄럽지만 말입니다. 다른 건 다 나도 해보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이건 진짜 자신없습니다.
p114를 보면 원장님이 "환자님 케이스는 처음 봅니다. 회복탄력성은 말도안되게 좋으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며 감탄했던 게, 우리가 이렇게 책으로 읽어도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인데 이런 일을 직접 겪었다면 대체 사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꼭 무슨 대형 트럭에 깔려야 치명상을 입는 게 아니라 별의별 사소한 충격으로도 상처를 다 입습니다. 그런데 정희승 작가님 같은 일을 겪었다? 그건 회복이 안 됩니다. 정말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글도 진짜 잘 쓰셔서 저는 처음에 창작 소설인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독자들, 제발 부모님 고마운 줄을 좀 압시다. 세상에 그런 분들이 또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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