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빙혈 2025/05/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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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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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 2025-04-21
: 300
김태현 인문학자의 군주론 해설서를 4개월 전에 리뷰했었고 여태 네 권의 책을 읽고 리뷰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철학자들의 명언을 담았는데 모두 네 파트로 나뉘었습니다. 제1장은 삶과 처세에 대한 통찰, 2장은 인간의 사유에 대한 말들, 3장은 특히 대문학가들이 남긴 말들, 4장은 동양 위인들의 말들을 분석합니다. 이 시리즈가 항상 그랬듯 원어, 혹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 번역어를 함께 실었기 때문에 영어 공부도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책은 제4장이 조조, 루쉰, 한비자, 여러 제자백가 거두들의 말을 주제로 삼았기에 한문 원문을 병기한 점이 시리즈 기간(旣刊)들과 다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41 이하에는 사르트르가 남긴 명언들이 나옵니다. 원문이야 불어이겠지만 사르트르 정도 되는 거장들에겐 영어 번역가들도 일류들이 커버하므로 이 문장들도 충분히 권위 있습니다. "불안이란 자유가 느끼는 현기증이다"라고 하는데, 역시 그다운 멋진 말입니다. 노예나 돼지의 정신에는 불안이고 뭐고가 깃들지를 않는 법입니다. 사르트르가 즐겨 쓴 현기증이라는 보조관념에는 그의 신체 특징 관련한 다른 이유가 작용했겠다고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이렇게 그의 말 자체에만 집중해도 얼마든지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파시즘은 그 피해자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살인의 방법에 의해 정의된다"는 명언도 있네요.
같은 시대 프랑스 실존주의의 또다른 거장(사르트르와는 자주 대립한) 알베르 카뮈는 3장이 아니라 2장에서 다뤄지는데 아마 "인간의 사유"라는 주제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서 그리하신 듯합니다. Man is mortal, but I must rebel and die.라고 할 만큼 그의 사상은 "반항적 인간" 한 마디에 잘 녹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Life is not something to be built but to be burned down.이란 말도 있는데, 확실히 이분은 화끈한 형님이십니다. burnt가 아니라 burned down이라고 하신 그 깊은 의도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서쪽에서 온 달마는 조사(祖師)도 죽이고 부처도 죽이라고 했는데, 이 형님은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한, 너는 인생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 양반 돌아가신 모습을 보면 자신의 말에 참으로 충실했다는 점에 동의하게 됩니다.
황제의 자리가 그저 마음 편하고 온갖 호사를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책임이 또한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고생과 고민만 잔뜩 하고 군주로서 영화를 즐기지는 못했던(=않았던)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마도 수백 년 먼저 살다 갔던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 정치라는 게 바로 이런 이의 치세를 두고 이름일 것입니다. "세계는 변화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생각들이 결정한다(p111)." 이 말의 원어는 고전 라틴어이겠지만, 영어 번역문에서는 섬세하게 세미콜론이 두 절(clause)을 가릅니다. 5현제들의 시대에 세미콜론의 저런 용법은 없었을 테고, 김태현 인문학자의 한국어 번역도 그 문장부호를 살렸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p74). 다들 알듯 이건 그의 책 제목인데, 독일어 원어는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이죠. 영어나 독일어나 조상이 같아서 저런 allzu같은 표현을 보면 두 언어가 정말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 확인하게 됩니다.이 저서의 부제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해"인데, 인간 정신과 영혼의 본질이 독창성을 기반으로 삼는 자유라는 점, 니체는 온몸으로 절규했던 것입니다. "믿음(faith)이 과연 무엇을 입증하는가? 정신병원을 산책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다." 니체다운 냉소적인 말입니다. 뭘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자는 시설에 수용된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음을 잘 드러냅니다.
톨스토이는 니체보다 16살이 많았는데 죽기는 십 년 뒤에 죽었습니다. 그의 명언들을 읽어 보면 니체의 격정적인 세계와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김태현 저자가 p148에서 말하듯 그는 (의외로) 여성 심리를 읽는 대가(大家)였고 <안나 카레리나> 같은 작품에서도 그 섬세한 문장 안에 잘 드러납니다. 사람들 사이에 대립이 있을 때 p156 이하에 실린 그의 말을 읽어 보면 매우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마지막 장은 동양인들의 지혜인데, 한비자(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저자가 평가합니다)의 말 要講統治術 不要講信任關係라는 문장을 보고, 어쩌면 조금 뒤에 나오는 맹자(孟子)의 말과 이렇게나 빛깔이 다를까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명언의 지혜와 함께 한자 공부도 할 수 있어서 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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