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헤밍웨이, - 글쓰기의 발견>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도 같은 소설가, 언론인, 평론가 래리 필립스가 편집했는데, 글의 취사 선택과 배열에 있어 어떤 일관된 시야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우리에게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작가인데, 젊어서부터 화려하고 주목받는 삶을 살았으나 배우자 젤다, 그리고 자신의 무절제함 때문에 말년에 큰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재능만큼은 진짜였는데, 이 책에 실린 그의 솔직한 고백들을 보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를 바까지는 없는, 한 인간이었음도 확인하게 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60에는 원래 1936년(그가 죽기 4년 전) 에스콰이어 誌에 기고한 글 일부가 인용됩니다. 스스로에게 "설교"한다는 표현을 쓰며 원칙과 초심을 잊지 말 것을 다독이는 느낌인데, 사후에 출판된 <The crack-up>에서 이 부분 원문을 독자인 제가 잠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et me preach again for a moment: I mean that what you have felt and thought will by itself invent a new style, so that when people talk about style they are always a little astonished at the newness of it, -because they think that it is only style that they are talking about, when what they are talking about is the attempt to express a new idea with such force that it will have the originality of the thought. (It is an awfully lonesome business, and, as you know, I never wanted you to go into it, but if you are going into it at all, I want you to go into it knowing the sort of things that took me years to learn.)
newness, originality 등이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사로잡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래리 W 필립스가 인용하지 않은 뒷부분도 제가 괄호 안에 옮겨 보았는데, 이로써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책 p48 상단을 보면 스콧 피츠제럴드가 맥스 퍼킨스에게 보낸 편지 일부가 인용되었는데, 이 맥스 퍼킨스라는 편집인은 (피츠제럴드가 지금 거론하는) 토머스 울프(Wolfe)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특히 저 토머스 울프는 이 편집자가 완성해 낸 천재라고 해도 되겠는데, 편집자가 작가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확인시켜 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연을 다룬 영화가 콜린 퍼스(M 퍼킨스 역), 주드 로(울프 역) 주연의 2016년작 <지니어스>입니다.
아무튼 그는 토머스 울프가 (자신과 같은) 천재임을 인정하며, 이런 천재가 천재로 태어난 재능, 모습 그대로 성장해야지 세상과 독자의 기호에 맞추느라 무슨 서커스 차력사 같은 길로 빠져서는 안 된다고, 제발 울프를 그 생긴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좀 놔두라고!라며 퍼킨스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 절규가, 꼭 울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을 염두에 두고서도 하는 말 같이 들렸습니다. "그러니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시오!" 무슨 좀머 씨(Herr Sommer)도 아니고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페이지 하단의 글에서는 피츠제럴드 자신이 헤밍웨이에게 준 영향에 대해 본인이 직접 평가하는(가정법을 쓰긴 했으나) 대목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서는 피츠제럴드가 가장 나이가 많고, 헤밍웨이, 울프 순서입니다. 울프를 빼고 도스패서스를 넣으면 Lost Generation 대표 리스트 완성입니다.
애초에 글을 쓸 때 그 구조부터가 잘 이뤄져야지, 누덕누덕 기워 만든 글은 본인이 나중에 읽어도 잘 읽히지 않더라고 털어놓는 대목도 p36에 나옵니다. 스스로도 자기 글이 잘 안 읽힌다면 남이 읽을 때야 대체 어떻겠습니까? 물론 이것도 에스콰이어 誌를 읽을 만큼 어느 정도 문해력을 갖추고 독서 감각이 있는 독자를 전제로 하는 말이지, 초등 국어 교과서 말고 읽을 수 있는 글이 하나도 없는 사실상의 문맹자라면 무슨 불평을 할 자격도 없습니다. 저는 어느 커뮤에서 초6용 고난도 수학 문제를 보고 "이런 걸 애들더러 풀라니 미친 나라 아니냐!"고 포효(?)하는 분을 봤는데, 나라에 이런 아저씨들만 잔뜩 있으면 반도체 회로나 자동차 엔진은 누가 설계하겠습니까? 부존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은 뭘 먹고 살겠고 말입니다.
p25를 보면 피츠제럴드가 과연 그답게, 헤밍웨이 스타일(당대 독자들이 더 좋아했던)을 자신에게 은근 강요하는 퍼킨스더러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는 헤밍웨이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하다"고 강력 항의합니다. 헤밍웨이는 문장이 단조롭고 간명했는데, 그건 헤밍웨이가 대단한 공력을 갖추고 시적(詩的) 심상을 문장에 담을 줄을 알았기에, 그 사람이니까 그래도 되었던 것이지, 무슨 초딩 문장의 합리화 같은 게 아닙니다. 피츠제럴드는 "이건 생존 본능의 문제"라고까지 말하는데, 쉽게 말해 "당신 자꾸 이러면 작가로서 나는 죽으라는 소리"라는 뜻이죠.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 <낙원의 이편 This side of paradise>로 데뷔했는데 p136 이하에 보면 그 숱한 거절을 당하면서도 기어이 출판을 이뤄내던 때의 기쁨, 다른 일화 등이 나옵니다. 이런 걸 보면, 고뇌와 불안 끝에 예술적 희열을 맛본 14세기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다를 바 없는 삶입니다.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려면 무릇 이 정도가 되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