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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사르트르를 만나다
  • 백숭기
  • 16,650원 (10%920)
  • 2025-04-22
  • : 500
장폴 사르트르는 "작가는 무엇인가의 도구가 되는 걸 거부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수여된 노벨 문학상을 사양하기도 한, 자기 시대의 양심이자 가장 명석한 두뇌였습니다. 파리 고등사범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20세기 페미니즘의 대모라고 할 시몬 드 보부아르 여사와 계약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에게는 자유롭기를 그만둘 자유가 없다."가 그것입니다.

(*북유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freedom fighter라는 직분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동료 인류를 위해 미래의 후손을 위해 개체의 이익을 포기하고 그런 고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의미 추구를 중단하고 말초적 쾌략만을 추구하며 극단적 감정만을 표현하는 반지성주의의 시대에 우리는 재기 넘치던 천재의 화려한 문장과 심오한 사색을 톺아보며 무엇이 참된 삶이고 가치일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투(被投)적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본디 마르틴 하이데거가 Geworfenheit라는 개념으로 코인한 것인데, 독일어 동사 werfen(던지다)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형은 warf, 과거분사형은 geworfen인데 이 과거분사형에서 저 단어(명사형)가 나왔습니다. 하이데거는 히틀러와 나이가 같고,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사르트르는 그보다 16살 어렸습니다.

프랑스어로는 저 피투성(被投性)을 etre jete라고 하는데, 청년 P가 사르트르 살롱에서 어느 교양 있는 신사에게 처음 듣는 철학용어(p34)입니다. 발레 용어 그랑주떼라고 할 때 그 jete와도 같은 단어입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이렇게 던져져서 이처럼이나 고생을 하며 살지만, 그 와중에도 생존만을 위해 존엄을 포기하지는 않기에, 우리 인간은 (파스칼의 말처럼) 전 우주보다도 큰,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썼고,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라는 걸작을 남겼습니다. 우리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궁극의 질문은,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입니다. 이보다 더 고차원적인 질문은 필멸의 존재인 우리에게 상정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le vertige, "현기증"이라고 하면, 사르트르에게는 이것이 "존재의 불안"에 붙인 보조관념이었습니다.

이 책 p93에서 수수께끼의 신사는 현기증이라는 게, 어려서부터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사시(斜視)로 고생한 사르트르의 일생을 따라다닌 장애로서 자연스럽게 생각난 비유일 것이라는 취지로 청년에게 이야기합니다. p100에, 유명한, 토끼인지 오리인지 모를 착시 그림이 인용되는데 이게 의외로 역사가 오래되었고 심지어 사르트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되었다고 하죠.

p128에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언이 인용되는데, 신사는 이 말을, 실의에 가득찬 청년 P에게 격려의 취지로 들려 주는 듯합니다. 이걸 책에서 그대로 필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homme n'est point la somme de ce qu'il a, mais la totalité de ce qu'il n'a pas encore, de ce qu'il pourrait (avoir).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봐도, 그 해석만 놓고 봐도 멋진 말입니다. p131에는 <슬픔이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어린 나이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한 짧은 소개가 있는데, 사르트르와도 만난 적이 있다고 나오네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그 당/부당에 무관하게 유명하죠.

p156에 보면 사르트르는 존재에 아무 이유가 없고 그저 모든 게 우연이라고 선언했는데 실존주의라는 철학의 출발점과도 같습니다. 존재 이유(raison d'etre)라는 걸 존재를 걸고 집요하게 따지던 이전의 철학자들과 달리 사르트르는 감각적이면서도 현란한 문체로 그 부조리를 냉소했습니다. 실존(l'existence)이란, 이면의 본질(l'essence)이 규명되기 전의 현상(le phenomene)을 가리킨다고, 신사는 p158에서 청년 P에게 아주 깔끔하고 쉽게 가르쳐 줍니다. 용도가 평생 고정된 채 존재해야 하는 의자와 달리, 사람은 자유롭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의지로 살아갈 수 있으며, 위의 명언도 이런 그의 철학적 스탠스를 알고 읽으면 그 의미가 완전히 새롭습니다.

자유, 엘란 비탈로 가득한 인생은 결코 구토에 시달리지 않으며, 평행우주에서 앙투안 로캉탱과 Ogier P(혹은 도서관의 독학자. l'Autodidacte a la bibliotheque)는 다시 개운한 마음으로 재회하여 유쾌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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