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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이어령의 말
  • 이어령
  • 19,800원 (10%1,100)
  • 2025-02-26
  • : 32,505
"수백 권의 저작에서 뽑은 에센스 중의 에센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인문학자이자 문학가인 이어령 선생은 생전에 무척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혹 선생의 열렬한 추종자, 팬이라고 해도 그 모든 책들을 일일이 읽고 소화하기란 힘듭니다. 다작을 한 문필가의 모든 결과물을 톺아보는 일이란 참 만만치 않은데, 예를 들어 지금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인 세계사에서 박완서 전집을 일찍이 펴낸 적이 있고 저도 소장 중인데, 아직도 다 읽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쁜 현대인들에게, 위대한 정신의 소산 그 핵심만을 추려 읽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자체로 고마운 일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바는, 이어령 선생은 문장을 문단이나 챕터, 개별 저작으로부터 고립시켜(추출하여) 읽어도 그 하나하나가 명언이며, 어떤 의도로 하신 말씀인지 뜻이 명확히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맥락과 분리되면 뜻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정반대로 왜곡될 수도 있는데, 이어령 선생의 문장과 명언은 그 자체로 잘 읽히고, 이렇게 에센스 포맷으로 접할 때 거꾸로 더 강렬하게 뇌리에 박힙니다. 제 짐작으로, 이어령 선생은 처음부터 글을 이렇게(의식적으로) 쓰시는 분이며, 마치 수학의 프랙털 구조처럼, 부분을 보면 전체가 유추되고 또 전체로부터 부분이 짐작되는, 천재만의 입체적 역동적 글쓰기가 가능한 분이었던 듯합니다. 이 책 서문의 제목은 "어록은, 이어령이 쓴 일행시다"입니다. 이 서문은 선생의 천생배필이셨던 강인숙 여사가 쓰셨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하던 고인류(古人類)입니다. 선생은, 원숭이나 다를 바 없었던 이들이 무덤이라는 걸 만들어 죽은 동료를 기리고, 놀랍게도 그 안에 꽃가루를 넣었다는 사실(p92)에 주목합니다. 선생은 말합니다. "어느 원숭이가 무덤에 꽃을 놓을 줄 안단 말인가?" 원숭이는 고사하고 사람 역시도 해야할 도리를 하지 않는 자가 부지기수지요.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우리는 바로 이런, 무덤에 꽃을 둘 줄 알았던 원숭이부터 갈라져나온 영혼들입니다. 다만 여기서 독자인 저는 망자에 대한 예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본성, 사후 세계에 대한 명상 등에 초점을 두어 읽었는데, 책에서 이 대목의 제목을 뽑기로는 "아름다움"으로, 그 미학적 측면을 더 중시한 듯합니다.

"무언극, 그것은 침묵으로 이룩한 음악이다(p202)." 저는 여태 책프에 참여하며 이어령 선생이 아직 30대였던 시절에 쓴 희곡 몇 편을 읽고 리뷰를 쓴 적 있습니다. 선생이 희곡 창작에 한창 정열을 쏟을 때는, 유럽(특히 프랑스)에서 외젠 이오네스코 같은 (공산권 루마니아 출신) 작가가 연극 문법 종래의 것을 모두 해체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을 때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추송웅씨 같은 배우가 1인극, 판토마임 등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고, 뭔지도 모르면서 겉멋만 들어 자신이 연예인인 양 착각하는 미친 노파도 수원에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이 언명은, 특히 그가 성의를 들여 창작했던 희곡 여러 편을 염두에 두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요약하길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p331에서 이어령 선생은 "한 가지 위에만 오래 앉은 새는 그 삶이 참으로 편하겠으나, 대신 어떠한 생기도 즐거움도 딱히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그 생명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움직이고 먹이와 쉼터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한 자리에 안주하면 결국은 도태됩니다. 세상을 벌벌 떨게 한 사라센 제국, 오스만, 몽골, 브리티시 엠파이어도 결국은 달콤한 현실에 만족하고 멈추면서 쇠락의 길을 밟았습니다. 선생도 특히 21세기들어 디지로그 같은 책을 쓰며,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담론을 무척 일찍부터 체계화하여 설파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정신을 언급한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그 어떤 사상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우리 민족만의 장점과 개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리적이기까지 합니다. 한 권으로 읽는 이어령, 방대한 이어령 유니버스(?)의 주요 경영인이자 지분권자인 강 여사님이 그 편집에 관여하셨기에 더욱 권위 있는 멋진 원 볼륨 데퍼니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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