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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보이지 않는 神 보이는 神
  • 이승남
  • 16,200원 (10%900)
  • 2025-03-25
정말 대단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이야기를 이렇게 장엄하게 전개하신 결과물을 보면, 창작의 배경에 어떤 다른 사연이 따로 있지 않으실까 짐작도 잠시 했습니다만, 독자로서 일단 지나친 개인적 비약은, 이 서평 중에는 잠시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김동리의 단편 <무녀도>라든가 그 확대 개작 <을화> 같은 걸 보면, 한반도의 토착 무속 신앙과 christianity의 한판 대결상이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고등종교가 이끄는 인간 영혼의 정화와 의화는 일개 푸닥거리의 사이비 혼씻김과는 근본에서부터 구별되는 이성적, 영적 과정이겠습니다만 어찌된 일인지 21세기 한국에서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미신이 강남 번화가에서까지 활개를 칩니다. 그래서 일선 정통 교회의 목회자들이라든가 독실한 중견 신도들까지도, 엄연히 현실에서 힘을 떨치는 샤머니즘과 맞서 투쟁을 힘겹게 펼치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꾼다고 가꾸지만, 마음 속에는 수천년 반도인의 유전자 안에 내려오는 잡귀 숭배의 본능이 여전히 꿈틀댐을 자각하고, 끝없이 그를 몰아내기 위해 투쟁하는 어느 은퇴장로님의 처절한 고백이라고 이 작품을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신(神)은 본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알라이든 야훼이든 혹은 부처님이든 속성상 눈에 보이지 않아야 사리에 맞습니다. 신의 역사함은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에 두루 미치나, 신 자체가 보인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아마도 사이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해서는 딱히 새로울 게 없고, 보이는 신 이야기가 이 소설 속에서 정말 재미있게, 살벌하게 전개되는 것이니 독자가 여기에 포인트를 두고 읽어야 합니다. 사이비가 사이비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마음 속 사이비의 유혹이 워낙 달콤하여 그를 쉽게 떨칠 수가 없는 게 우리들 약한 인간의 처지입니다. 도륙도 사실 사탄의 도구로 비참하게 끌려다니는 불쌍한 인생일 뿐, 그를 미워하고 단죄하는 게 성도의 본분은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도륙 같은 자도 (그를 도륙하기보다는) 온전히 진리와 빛의 세계로 이끌어야 하며, 그래서 이 장편 안에서 힘겹게 전개되는 주인공의 투쟁이 더 눈물겹다고 하겠네요.

이 소설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p88 같은 곳을 보십시오. 보송암의 무당 선구슬은 전도사가 개인적 만남을 세속적 장소에서 청하자 기다렸다는 듯 전혀 망설임 없이 수용합니다. 암자에서는 손님을 압도하려는 기싸움을 벌이려던 노련한 직업 무당이었는데, 상대방이 단정한 신사이고 타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품과 매력이 있으니까 커피숍(아마도?)에서는 바로 양순하고 다소곳한 여인의 자태로 나옵니다. 이게 남성과 여성의 차이이기도 하며, 이성과 명징한 사고를 중시하기도 하는 고등종교와 무속의 엇갈림이기도 합니다. 큰무당이든 새끼박수이건 간에 무속인은 그저 제 본능에 충실할 뿐 어떤 에고나 초자아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두고 전도사가 방심하여, 아 이 사탄을 주님의 길로 이끄는 방법이 생각보다 쉽겠구나 여긴다면 크나큰 착각입니다. 진짜 지옥문은 지금부터 열리는데 저는 벌써부터 짐작이 되었더랬고 아니나다를까 줄거리는 그쪽으로 흘러갑니다.

사탄의 전도에도 성공한 성도의 교회는 큰 명성을 얻어 번창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전략적으로 일보 후퇴하여 교회를 몸주삼아 세상 돈을 빨아들여 궁극의 승리를 이루려는 암수였습니다. 끝내 전도사는 식물인간이 되어 보송암으로 도로 모셔져 크나큰 무속 비즈니스의 도구로 쓰이는 비참한 지경에 빠지는데, 이처럼 "다음 기회를 노리는" 사탄의 간교함이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입니다. 사탄만 탓할 게 아니라 사실 전도사한테도 문제가 큽니다. 자신이 매력으로 무당을 반하게 만들었다 여겼겠으나, 사실은 거꾸로 자신이 여인네의 색기에 정복된 게 아니었습니까? 또 세상의 칭찬과 인정에 도취하여, 예수의 참된 가르침은 잊고 교회를 돈벌이 소굴로 타락시키지는 않았습니까? 사탄과 무당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진솔하게 성찰할 일입니다. p196에 나오듯 사탄 역시 신의 피조물이며 크게 보면 다 신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의 얕은 수에 넘어가는 우리 인간이 문제일 뿐입니다.

색에 빠지면 의인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타락합니다. p213을 보면 모세도 젊은 여인을 취했고 처첩 천 명을 둔(정말요?) 솔로몬 왕도 또 쳐녀를 가지려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겨레를 애급의 노예 꼴로부터 해방시킨 모세도 죽을 때까지 가나안의 복지에 안착하지 못했고(꼭 그것때문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솔로몬의 사후 아들 르호보암의 대에 왕국은 두 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p233에 나오듯 죽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눈에 보이면 그건 이미 죽음의 현상이 아니고 살아 있는 뇌가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는 어디이며 천국은 어디 있습니까?(p257)" p276 이하에 펼쳐지는 "사탄의 총리대신"이라는 챕터는 마치 21세기판 요한 계시록을 읽듯 장엄하고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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