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고수경 단편집) - 열린책들
빙혈 2025/04/0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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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보호법>, <옆사람> 등 모두 여덟 단편이 실렸습니다. 고수경 소설가는 5년 전쯤 데뷔한 신인 작가분인데, 이 책에 대한 추천사로는 작년(2024) 이상문학상을 받은 조경란 작가가 쓴 게 책 뒤표지에 나옵니다. 누가 이웃이고 누가 타인인지 가장 민감한 감성을 발동하여 판별해야 하는, 온갖 기만과 폭력과 협잡이 난무하는 이 21세기에, 따뜻하고 차분하게, 독자로 하여금 모종의 성찰을 하게 돕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Life goes on. 여태 자신을 돌봐 주던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지 모르지만 지우에게는 "공부"하느라고 여유가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책도 학교도 학원도 아닌 유튜브가 첫째가는 스승이라서, 지우는 (학교 공부가 아닌) 혼자 살아남는 방법 공부를 하느라고 열심히 영상을 봅니다. 안쓰럽기도 하지만, 절망이나 불안감에 빠지지 않고 저렇게 의연하게 생존의 스텝을 밟으니 대단합니다. 젊은 교사 강은 읊조립니다. "윤아야 지우야, 너희 정말 괜찮을까?(p41)" 괜찮을 리가 없지만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은 또 다릅니다. 불행이 느닷 행복으로 반전하진 않겠으나 사람의 귀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한, 세상은 덜컹거리면서 어떻게든 돌아는 갑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허용된 공간이 있는데 이건 상속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방>에 나오는 연호와 소희에게처럼 계약에 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 상황이긴 하지만 이 둘은 아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따져 가며 자신들에게 허여된 공간의 경계를 조심스레 지키려 듭니다. "그럼 우리는 주아 세대 창고에 살고 있는 거야?(p58)"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공간은 알고 보면 누군가의 창고, 헛간, 화장실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 방이 아닌데 뭐.(p61)"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한데, 여튼 집에 머무르는 동안 열쇠는 이 젊은 커플의 점유임이 확실하며 아직은 신선한 상대의 장점도 또렷이 인정될 수 있겠지요.
호수에 알파벳이 붙으면 그건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니라, 예컨대 무슨 생떽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이름으로나 적합한 걸까요? 독자인 저는, 송에게 구태여 그런 말(p91)을 하는 "나"의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알파벳이 다른 글자도 아니고 B였다는 게 진짜 문제였을지 모릅니다. 여튼 송은, "나"의 거소 증명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이웃입니다. 이렇게 존재의 구체성을 소홀히 관리했다는 게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입니다. 집주인인 김정훈(p101)은 비상시 마스터키를 갖고 다 열어 볼 권능이 있으니 세입자들은 그 이유라면 이 사람 앞에서 작아집니다. 밤이라고 해도 더우면 에어컨을 켜야지 어쩌겠습니까.
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질 않으면 그건 이미 분실이지, 객관 주관을 가릴 건 아닙니다(객관적으로는 아니지만 주관적으로는 분실이다). 입대한 남 제대날짜는 눈깜짝할 새 다가오듯 남이 끌고 다니는 짐은 정당한 사연이 있는(?) 내 짐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은희가 지영에게 무심히 던진 저 말(p142)은 이기적인 세상사 그 핵심을 압축합니다. 은희는 아대만 차고 있을 뿐 테니스 치는 것도 싫어하는데(p123), 저는 이 작품집 통틀어서, 단순 공감을 넘어 이해까지 하고 싶어진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은희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건 새뿐이 아닙니다. "아내"는, 베란다 난간에 일단 앉아 가출을 위협하는 "소금"한테, 일단 말로 하자며 무기력한 회유를 시도합니다. 남편뿐 아니라 밖에서 보는 독자도 기가 막힙니다.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며 주위를 설득하는 애견인의 변호가 설득력없듯, 아내가 "웬만한 애보다 순해요"라며 감싸는 시도는 부리의 긺과 날카로움에 대한 지적 앞에 논파됩니다. 배송비를 충분히 냈다면 스크래치 없이(p175) 욕조가 안전히 설치되어야 하듯,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오르는 수위처럼 우리의 소박한 기대도 어느 정도까지는 만족되어야 하지만 이걸 가장 악착같이 가로막는 건 숱한 그 타인들의 장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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