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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구미호 식당 3 : 약속 식당 (특별판)
  • 박현숙
  • 12,150원 (10%670)
  • 2025-01-07
  • : 50
3년 전인 2022년 2월 특서에서 나온, 이 시리즈 세번째 작품 <약속 식당>을 읽고 리뷰도 썼었습니다. 이제 시리즈 제3권의 특별판이 이렇게 나왔는데, 규격은 약간 위아래로 길어졌습니다. 손에 들고 읽기에는 더 편해진 것 같습니다. 간만에 이 시리즈 핵심 키워드인 "파감 로맨스(p19, p47 등)"를 다시 만나니 예전에 재미있게 읽던 느낌도 다시 살아나고, 연휴에 제가 재료를 직접 사서 이게 진짜 되는지 만들어 보고도 싶어졌습니다.

(*북뉴스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에게 만호는 교활한 여우가 아니라 소중한 기회를 내려줄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p59)." 그러게 말입니다. 기한이 고작 100일이고, 다른 더 멋진 생을 살 수 있는 기회까지 마다하면서 구태여 한설이를 다시 만나려는 유채우도 유채우이지만 만호는 왜 이렇게 채우에게 친절히 구는 걸까요. 어떤 아줌마가 들어와 다짜고짜 "이런 식당을 사(서 개업하)다니 사기를 당한 셈"이라며 단단히 오지랖(이게 뭔 소리인지는 저 뒤 p186 황 부장 이야기까지 들어 봐야 합니다)을 부리는데 채우는 (40대 여성으로 변한 건 물론) 이 상황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고, 자신이 채우이며 설이를 만나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입니다. 이제 채우는 전혀 낯설 뿐인 이 잠시(길어야 백일이라고 하니)의 새 인생에 대해 적응해 가야 합니다.

채우는 이 생에서 식당 아줌마(김보영. 42세. p187)로서의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질문에 대해 "나는 하루치 재료만 준비하고, 다 쓰면 음식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제대로) 대답합니다. 이상하죠. 방금 막 들어오게 된 인생인데도 이런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맞는 답이 척척 나오니 말입니다.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합니다(p70). 이런 걸 보면 아줌마의 정신에는 원래의 다른 트랙이 깔려 있는데 잠시 쉬게 하고, 100일간만 잠시 이분의 몸을 빌린 후 기간이 되면 도로 내 주는 식인가 봅니다. 우리도 가끔 공황이 왔는지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지요.

왕 원장이라는 남자는 날 언제 봤다고 언니 언니 거리며 파마비는 십만 원만 받겠다고 합니다. 아줌마로 살아 본 적이 없으니(정확히 말하면, 기억에 없으니) 파마가 얼마나 비싼지도 모르고, 식당 주인 노릇도 처음이니 아이한테 돈을 도둑맞지 않게 잘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몰랐다가 낭패를 겪습니다. 그래도 이 삶이 편하기도 해서, 원장한테 나중에 십만 원 어치만 와서 밥을 사 먹으라고 하니(이런 융통성이 발휘되는 것도 신기) 또 그러겠다고 합니다. 누구의 생이건 일장일단이 다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는 사두개인들이 묻기를 여러 번 결혼한 여인이 천국에서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하자 아버지의 나라에서 지상의 가족관계란 아무 의미 없다고 대답했다는 게 마태복음 22장에 나옵니다. p85를 보면 채우는, 아이 누나 이름이 고동미라면 아이 이름이 (구동찬 아니라) 고동찬이라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애쓰지만 곧 이게 다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가족의 형태도 수없이 변화"하니 말입니다. 형제나 남매면 성이 같아야 한다는 발상이 촌스럽다고도 합니다. 이런 생각도 아마 그전의 유채우의 삶을 그대로 사는 중이었다면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음식 장사를 하다보면 별의별 진상이 다 있겠다는 건 직접 장사 경험이 없어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왕 원장이 시식하고 가라고 권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순순히 올까요? 장사에 달통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감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붙기도 하나 봅니다. "돈을 벌려 애쓰면 돈이 찾아오길 망설이고, 일을 하려 애쓰면 돈이 절로 찾아든다(p104)." 어디 장사뿐이겠습니까. 세상 이치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와중에도 구주미는 채우더러 재료가 나빠서 게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둥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갑니다(p177을 보면 이게 집안 내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에휴). 여튼 이 구주미로부터 예쁘다미용실, 그리고 설이에 대한 정보(p133)를 알아 내야 하기 때문에 채우는 얘를 마구 대할 수는 없습니다. 동찬이는 비밀병기(메뉴 이름입니다)를 좋아하며 파감로맨스를 싫어합니다(p156).

사람 마음이 가는 길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채우는 어느새 고동미와 구주미가 황우찬을 동시에 좋아한다는 사실도 눈치챕니다(p167. 그러나 p208 이하를 보면...). 파감로맨스는 대체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지 황부장도 시큰둥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왕 원장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이 생에서 설이의 정체는 바로 ooo이었음이 소설 끝에 가서야 드러납니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그리 큰, 단단한 실체가 없음을 확인하면 많이 슬퍼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만호 같은 존재한테 이렇게 특별한 호의도 받고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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