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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군주론 인생공부
  • 김태현
  • 16,650원 (10%920)
  • 2025-01-20
  • : 2,225
<시네마 명언>, <실리콘밸리의 천재들> 등을 쓴 인문학자 김태현님의 새 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 체사레 보르자라는 유력 정치인을 모시며 이탈리아의 통합된 국가 체제를 꿈꾸었던 책사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고전 <군주론>에 대해서는 패도정치를 옹호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날카롭게 포착했고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을 정확히 통찰했다는 찬사도 같이 받습니다. 어떤 고전이 그저 듣기에만 좋은 소리를 달달하게 늘어놓은 것도 아닌데 이처럼 오래 읽힌다면 그에는 뭔가 특별한 장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고전의 맥락과 의의를 꿰뚫어볼 수 있는 인문학자의 솜씨로 요약, 분석된 책은 바쁜 현대인들의 노력과 시간을 크게 덜어 주며 고전의 정수는 정수대로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3을 보면 "군주는 자신이 한 약속을 언제든 깰 권리가 있다"는, <군주론>의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를 우리는 속된말로 양o치라고 하죠.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원활한 기능의 작동을 위해 일정한 규약을 정해 두고 이의 준수를 성원들에게 당연히 요구합니다. 이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동의했던 바라서, 이런 걸 지키지 않는 자가 늘어나면 질서와 체제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런 상식과 이치를 마키아벨리가 몰라서 저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겠습니다.

김태현 저자의 유려한 필치로 분석되는 바에 의하면, "과거의 약속이 현재 상황에 맞지 않게 되면, 성공을 위해 보다 유연한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동아시아에서도 미생지신이라 하여 미련할 만큼 문언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고, 민사재판에서도 이른바 사정변경의 원칙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김태현 저자가 이 챕터의 서두에서 <동물농장>의 명언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를 잠시 거론한 건, 저 마키아벨리의 명언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기는 당혹스러움을 솔직히 표현한 의도로도 읽힙니다. 라틴 금언에 pacta sunt servanda라는 것도 있습니다.

"대중은 항상 외관에 속고 세상은 주로 대중으로 이뤄져 있다.(p72)." 그래서 일부 사악한 정치인들이 언제나 어리석은 대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불측한 목적을 달성하려 들고, 이런 역사는 수백 수천 년을 통해 반복되었습니다. 저자도 히틀러를 책 곳곳에서 거론하는데 실제 <나의 투쟁>도 이런 점을 거듭하여 강조함으로써 대중을 현혹할 걸 가르치는 대목이 많습니다(물론 마키아벨리의 고전과 달리 독창성은 아주 부족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자면, 우리들도 그저 남들이 좋다며 우루루 몰려가는 생각없는 소비, 개성 몰각, 속물적인 유행 가담에 대해 아무 자각이 없다면 저 마키아벨리가 꼬집은, 선동정치인의 먹잇감이 되기 좋은 어리석은 대중을 자처하는 꼴이겠습니다.

적대 세력을 처리함에 있어 아예 반격의 빌미조차 주지 말라는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아마 이 살벌한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통쾌한 느낌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복수는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해야 하며, 상대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또 재기 불능에 빠지도록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끔찍한 한 방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지극히, 지극히 타당합니다. 저자는 p86에서 코폴라의 고전 <대부>를 인용하는데, 그 영화에서 부친의 장례식이 끝난 후 주인공 마이클은 4대 패밀리의 수장들을 한날한시에 모두 처단하는 과감함을 보입니다. 마치 오다 노부나가가 오케하자마에서 이마가와 군(軍)을 기습하여 한큐에 쓸어버린 고사와도 비슷합니다. 결코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되며, 어설픈 동정심은 자멸을 부를 뿐입니다.

p128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덕목을 다 가진 양 위장하라"던 마키아벨리의 말이 인용됩니다. 저자는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거론하며, 결과적으로 정의로운 상황을 복원하기 위해 남자로 분장하고 살 1파운드에 피 한 방울도 섞이면 안 된다는, 이른바 필요적 부수행위의 개념을 무시한 채 궤변으로 연인 안토니오의 목숨을 건진 포샤, 그녀의 과감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셰익스피어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가 김태현 저자의 이 대목을 읽으면 무척 좋아할 것 같습니다. 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다가 샤일록 같은 인간쓰레기 좋은 일만 시킨다면 그건 악질 고리대금업자의 범죄에 공범으로 가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고전을 읽을 때에는 그 고전이 쓰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자 김태현 저자의 좋은 해설이 곁들여져, 이 험한 세상에서 뱀처럼 지혜롭게 살아남는 멋진 방편들을 더 재미있게 익힐 수 있었던 독서였습니다(그러나 다들 이웃과의 약속은 지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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